고슴도치같이 날이 서있는 제자를 껴안기 위해서는 스트레스에 무너지지 않을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언어와 행동에 짜증이 나고, 점점 미워지고, 급기야 야단치고 싶어지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교사는 기나긴 ‘시간’과 싸우며 ‘멘토’로 거듭나야 한다.
최근 인성교육에 대한 특강을 한 후에 받은 질문입니다. “저는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요즘 많은 학생들이 친구들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왕따도 시키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요. 친구들의 괴로움과 슬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변화시킬 방법이 있나요?”
저는 한참 머뭇거렸습니다. 제가 마땅히 해드릴 짧은 답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아직 누군가의 영향력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게 참 많습니다. 중학생의 경우에도 비록 반항하는 사춘기지만 새로운 틀을 짜는 시기인 만큼 개입할 여지가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고의 틀이 상당히 형성된 고등학생을 위해서 쉽게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고슴도치 보살피다 고슴도치 돼 버린 현실 “미안해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어요.” 한참 뜸 드린 후에 이런 맥 빠진 답을 하게 되어 정말로 미안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특강에 참석하실 때에는 신통한 해결책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참석자 모두에게 미안했습니다.
물론 이론적인 답변은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행동은 있지만 문제아는 없다. 아이들은 어른이 하기 나름이다. 문제행동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5가지 핵심 요소인 보호·보살핌·양육·지지·지도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생기는 애착손상의 후유증일 확률이 높다. 애착손상이 어른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피해망상과 적대감으로 이어지고 아이들은 마치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려고 온몸에 뾰족한 가시를 잔뜩 치켜세운 고슴도치 같다. 그러니 어른은 그런 아이들마저 품어야 한다.
하지만 저는 현실도 잘 압니다. 고슴도치 같은 아이를 보살피려고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돕는 동안 가시에 여기저기 찔리는 바람에 내 몸 역시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몸이 본능적으로 웅크려지고 신경이 곤두 서지고 그저 피하고 싶어졌습니다. 아이의 거친 행동에 짜증이 났고, 아이가 미워졌고, 야단치고 싶어졌습니다. 결국 저마저 가시를 치켜세운 고슴도치가 돼버린 것이었습니다.
스트레스에 무너지지 않는 회복탄력성 필요 그래서 저는 신통하고 간단한 해결법은 모릅니다. 제가 아는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교사가 가장 먼저 스트레스에 무너지지 않도록 충분한 회복탄력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최소 100일이 걸릴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감정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대화의 기술을 지녀야 합니다. 또 다시 100일이 걸립니다. 이런 장기전을 치루기 위해서 교사는 지식전달자가 아니라 멘토로 거듭나야 합니다. 아마 100일이 추가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해결책은 답을 아는 분들에게 맡기고 저는 장기처방과 예방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아예 영유아교육부터 제대로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학부모와 보육교사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보급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의 정상적인 발달에 치명적인 애착손상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애착손상은 최근에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 ‘발달적 트라우마 장애(DTD)’라고 명명되었고 ‘트라우마 타입3’이라는 고위기 등급에 포함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긴 산업화와 핵가족 붕괴 과정을 거친 서양은 너무 오랫동안 애착손상 후유증을 방치해 왔기 때문에 병세가 깊고 회복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최근에서야 애착손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에게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고슴도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고슴도치 양산을 막을 것인가. 우리 다 함께 현명한 선택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