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자기표현에서 출발하여 세상을 미적으로 바라보는’ 자유로운 방식의 경험이다. 즉, ‘느끼고, 관찰하고, 탐색하고, 감응하고’와 같이 ‘받아들이는 것’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미술 교과는 명제적이고 추론적 앎의 방식 이외에 몸의 경험과 마음·직관이 결합한 고유의 방식으로 앎을 일깨우며, 이성의 중요성 못지않게 비이성과 무의식적 접근을 통한 새로운 앎의 창출을 시도하는 교과이다.
흔히 미술 교과의 목표는 ‘시각 이미지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자기중심적 사고’를 넘어선 ‘세계와 소통하는 힘’은 이러한 협소한 교과 목표가 아닌 자신의 감각을 토대로 풍부하게 느끼고, 상상하고, 다르게 바라보며, 자유롭게 표현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살아있는 미술수업은 ‘체험’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수업을 디자인해 보았다.
체험은 언어적 인식 이전의 감각적이며 수용적인 특성을 살려야 한다. 때문에 ‘이해하기, 설명하기’와 같은 술어보다는 ‘감각하기, 탐색하기, 반응하기, 공감하기’와 같은 수용적 활동으로 학습 목표를 삼았다. 이러한 수업은 언어적 앎이 아니라 체험적 앎을 지향한다. ‘탐색에서 앎’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앎에서 탐색’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교사가 설명하고 따라 하게 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의 실천적 탐색 속에서 학습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창의적 능력은 미리 원리를 이해하고 적용(활용)하는 수업이 아니라, 어떤 전제도 없이 스스로 지각하고 탐색할 수 있는 열린 조건에서 일어나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종이의 변신 _ 미적 체험 표현 수업사례
다음은 우리 곁에 늘 있는 A4 용지를 다양한 방법과 오감으로 체험한 후, 느낀 감성을 표현하는 것까지 연결해보는 수업 활동이다. 수업의 시작은 모든 정보를 제거한 고작 80g의 A4 용지로 무한하고도 거대한 세계를 조각해내는 종이공예 아티스트 피터 칼렌스(Peter Callesen)가 발견한 ‘재료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는 것으로 출발한다. 피터 칼렌스처럼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이미지의 느낌을 체험해 보게 한 후, 사진을 찍게 한다. 그리고 사진의 제목을 붙이고, 친구들과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였다.
고작 A4 용지에 불과했던 종이가 만들어내는 무한한 세계를 서로 공감하면서 ‘공감의 파장’을 상호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또한 자신의 감각으로 체험한 종이의 성질과 느낌을 나의 삶과 연결하여 글을 쓰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감정을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종이가 내 앞으로 오기까지의 여행스토리, 종이로 여름 소나기 소리를 다 함께 만들어 내던 순간의 시원함, 구겨진 종이의 크기가 원래의 크기로 회복될 수 없다는 상황에서 흘린 의미 있는 눈물, 구겨진 종이가 갖는 부드러움과 포용력을 우정과 연결하는 따스한 마음 등 감동적인 나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종이가 변신하는 과정을 스톱모션으로 촬영한 후 연결하여 종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스토리를 입혀 보기도 하였다. 다음은 ‘종이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돕는 교사 발문과 안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