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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 편지 –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더불어 사는 삶

내 속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인으로부터 녹나무 한 조각을 선물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보이차를 마시러 간 벗의 차실에는 못 보던 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자주 오시는 할머니들께서 오래 앉아서 차를 마시기 불편해 하시기에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다시 차실을 꾸몄다고 하십니다. 탁자를 만든 목공이 몇 백 년 된 녹나무 몇 조각을 선물로 주고 갔다고 하시며 보여주셨습니다. 은은한 녹나무 향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커다란 녹나무는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대표적인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이웃집 토토로’ 첫 장면으로 제시됩니다. 시골 마을로 이사 온 자매와 신비로운 숲의 정령 토토로의 만남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린 애니메이션입니다. 착한 자매인 사츠키와 메이가 시골로 이사한 이유는 아픈 엄마 때문입니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가 퇴원하고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사를 한 것입니다. 집을 감싸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녹나무가 인상적인 낡은 집에서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 합니다. 그 아름다운 나무에는 정령 토토로가 살고 있고, 순수한 아이들은 그 나무와 나무의 정령 모두와 교감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습니다. 가슴 가득 초록이 물결칠 것 같은 녹나무 한 조각을 들고 마치 내가 토토로의 숲으로 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짝 말라있던 녹나무에 헝겊에 물을 묻혀 발라주었습니다. 갑자기 죽은 듯 보이던 나무가 세포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속에 감추어 두었던 향기를 터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말라붙은 나무 조각도 물과 접촉하는 순간 세포막 귀퉁이를 열어 생명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죽은 듯 보이는 것도 생명수와 접촉하는 순간 다시 살아있는 삶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녹나무는 자기 속에 있던 수많은 세포 속으로 물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 숨겨진 수많은 미생물들에게 공급합니다. 광합성 하는 나무로서 생명작용을 잃었지만 녹나무는 아직도 많은 다른 것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터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무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몸도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세포는 수많은 미생물과 네트워크를 이루고 접속하면서 진화해왔습니다. 즉 나의 몸은 나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미생물의 터전이며, 그 미생물과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미생물들의 생활 터전입니다. 우리 몸은 수많은 외부 미생물의 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교류하며 소통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사스를 비롯한 콜레라 등의 병원균에 대해 지나치게 민간하게 반응해 온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하고 미생물 학자 이재열은 말합니다. 그는 <우리 몸 미생물 이야기>에서 우리 몸은 많은 외부 미생물과의 소통을 통해 진화해왔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인 미생물을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하고, 이제까지 알려진 과학과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몸과 관련된 미생물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생물에 대한 홀로코스트 시대 - 요즈음 시중에는 침대, 이불, 소파, 칫솔, 노트, 방향제, 가습기, 에어콘 등 무수한 항균, 살균 제품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 제품들에 대한 텔레비전이나 신문 광고에는 어김없이 현미경으로 본 무수한 미생물들이 혐오스럽게 등장한다. 그 혐오스러운 모습은 현대인들을 전율케 만든다. 미생물들에 대한 악마의 신화가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광고들은 무의식 중에 소수의 미생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인간의 적이며, 그러한 미생물이 없는 주거환경을 만드는 것이 인간에게 이롭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람들은 미생물이 없는 ‘위생적인 주거환경을 꿈꾼다. 그리고 그 실현방법은 미생물에 대한 홀로코스트이다. 『우리 몸 미생물이야기』, 이재열 지음, 우물이 있는 집, 2004 


‘인간에게 유해한 미생물은 1%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대부분의 미생물을 몰살시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간에게 유해하다고 믿는 것은 잘못됐다고 합니다. 미생물은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벗인 것입니다. 빈대 잡기 위해 초가 삼 간 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어리석게도 가습기 속의 균을 죽이기 위한 그 물질은 우리의 생명도 위협했습니다. 미생물을 죽이는 것은 그 미생물과 함께 공존하는 우리도 죽일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왜 몰랐을까요? 아니면 눈과 귀를 막고 모른 척하였을까요? 의문입니다.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결코 미생물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이러합니다. 내가 사는 공간만 소중하다고 다른 것을 배척한다면 이것은 다시 되돌아와서 우리를 위협합니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고유 영역인 작은 빵집, 학교 앞 작은 문구점, 동네 떡집, 구멍가게 등에 손을 댄다면 당장 먹는 곶감은 달 것입니다. 하지만 다양성이 사라진 우리 경제가 과연 건강해질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건강한 중소기업들이 우리 혈액 속에 백신처럼 사회 구석구석을 건강하게 하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요? 

미국국립보건원(NIH)은 2007년부터 ‘인체 미생물 군집 프로젝트’를 세계 80개 연구소와 함께 벌이고 있습니다. 5년간 약 2000억원을 들인 이 사업의 목적은 사람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 몸의 미생물은 1만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연구결과를 보면, 사람의 몸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 사는 곳은 큰창자로 세균 수가 무려 4000종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몸은 이렇게 수많은 미생물이 사는 새로운 생태계입니다. 그 생태계의 주인이 과연 인간이 될 수 있을 지도 의문이 됩니다. 내 속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미생물과 함께 내 몸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자기 것으로 여겼던 내 몸도 내 것이 아니듯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저 잠시 내가 빌려서 함께 사용하는 모든 것을 정갈하게 그리고 소중하게 사용하고 곱게 돌려주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책상 위의 녹나무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은은한 향을 품어냅니다. 저에게 반가운 벗을 만나듯 세포를 열어 저와 소통합니다. 저 역시 그네의 향을 폐 속 깊숙이 호흡하며, 제 속에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과 공유하는 사이 겨울밤은 저절로 깊어갑니다. 행복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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