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고속도로는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과 꽃이 한데 섞여서 어느 것이 꽃인지 사람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나 역시 봄나들이에 동참하여 벗들과 벚꽃나무가 많은 인근공원으로 사진을 찍으러 갔다. 그런데 여행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잠시 다녀온 길인데 무척 피곤했다. 왜 우리는 기를 쓰고 꽃이 피면 꽃구경을 가야하고, 여름이면 피서행렬에 나서고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가야할까? 가끔은 나 자신도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여행의 테크닉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왜 우리는 여행을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행지를 고르고 잘 여행을 하는 문제가 아닌 궁극적 목적의 여행은 무엇일까를 잘 들여다보는 좋은 책이었다.
윌리엄 워즈워스, 빈센트 반 고흐 등 여행을 동경하고 사랑했던 예술가들을 안내자로 등장시켜, 여행에 끌리게 되는 심리와 여행 도중 지나치는 장소들이 주는 매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을 통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특히, 프로방스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그곳의 올리브 나무와 사이프러스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내용과 존 러스킨의 안내로 ‘말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자신만의 방법(데생, 사진, 말 그림 등)으로 표현한다면 전혀 다른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방법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오랫동안 살고 있어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고 치부해버린 바로 그 장소에 대한 새로운 탐구이다. 파자마를 입고 자신의 집을 어슬렁거리며 탐구해보는 것 역시 참 멋지다.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그 열의로부터 역설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18P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리기 전에 프로방스에는 사이프러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264P
반 고흐가 없었다면 올리브 나무 역시 지금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전날 내 눈에 띄었던 올리브 숲을 땅달막한 덤불로 치부해버렸었다. 그러나 반 고흐는 <노란 하늘과 태양과 올리브 나무>와 <올리브 숲>에서 올리브 의 줄기와 잎의 모양을 도드라지게 끌어냈다. /264P
아름답다는 인상과 더불어 그 근원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러스킨의 말에 따르면 예술만이 제대로 충족시킬 수 있는 욕망이었다./321P
좋은 책을 읽는 동안 좋은 벗과 함께 웃으며 다정하게 대화하며 여행을 다녀 온 듯하다. 새봄 여행을 떠나기 전에 꼭 읽고 가면 더 멋지리라 생각한다.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이레,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