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교육공약인 ‘고교학점제’ 도입과 관련해 교원‧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도서벽지, 농‧어촌 학교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자칫 교육격차만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보완, 기반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고교학점제는 고교에서도 대학처럼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신청해 듣고 졸업학점을 이수하는 것으로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 시행 중이다. 1단계는 학교 내 선택과정, 2단계는 학교 간 연합, 3단계는 지역 사회 연합, 4단계는 온라인 기반 교육과정으로의 확대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학교 규모나 지역 편차에 따른 한계, 교원 수급 등을 우려하고 있다. 소규모 학교는 교원 수가 적기 때문에 학생들이 희망하는 과목을 개설하는 게 사실상 어렵고 군 단위에 고교가 1~2개뿐인 지역에서는 학교 간 연계도 물리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농‧어촌 교원들은 철저한 준비와 연구 없이 시행 할 경우 시범운영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경기 A고 B교감은 “교과교실제도 잘 안 되는 상황에서 고교학점제는 시기상조일 수 있다”며 “우리학교는 인근 고교가 없어 시내까지 1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연계 운영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 수급이나 유휴교실 등 교육여건에 대한 방대한 투자와 입시제도의 개혁이 따르지 않으면 시범운영으로 끝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충남 C고 D교사도 “온라인 강의와 순회, 출장 등 찾아가는 수업을 통해 농어촌 지역에 대한 편차를 줄일 수 있겠으나 결국 물리적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과목의 다양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도시학교에 비해 학생당 교사수를 대폭 늘리고 농어촌, 도서벽지 근무자들에 인센티브 등 충분한 보상을 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남교육청 관계자는 “농어촌 지역 특성상 학교 간 연합이 어려운 만큼 온라인 강의나 방학을 활용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며 “고교 교육의 틀 자체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공청회, 현장의견 수렴 등 충분한 연구를 통해 접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농‧어촌 지역의 경우 온라인 강의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 또한 근본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따른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교원 양성과정에서 복수전공을 의무화 하는 등 한 교사가 여러 과목을 가르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바꿔야 할 것”이라며 “지역편차 극복을 위해 온라인 강의를 자칫 잘못 활용하면 되레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희규(한국교육정책연구소장) 신라대 교수는 “소규모 학교의 경우 과목 선택의 폭 뿐만 아니라 평가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며 “온라인 수업과 주말이나 방학에 거점학교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융통성을 발휘해야겠지만 이런 방식이 교육적으로 효과적인지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의 시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 출범 준비에 착수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구성이나 추진 방향에 대해 정해진 바는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추진방향 등을 받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농어촌 지역이 소외되지 않도록 극복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