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는 몇 가지 색깔이 있다. 악의 없는 하얀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속이 시꺼먼 거짓말….
만약 당신이 조그만 섬마을에 살고 있다고 치자. 한때 고기잡이로 잘나가던 마을은 어획량이 줄면서 대부분의 주민이 정부 보조금만으로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 마을을 다시 살아나게 하려면 공장을 유치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선 법규정에 따라 5년간 마을에 상주할 의사가 필요한데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외딴 섬에 머무르겠다고 계약할 의사 선생님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서 문제를 일으킨 성형외과 의사가 피신하듯 이 섬으로 찾아든다. 그는 딱 한 달 동안만 이 마을에 머무를 예정이다. 15년만에 찾아온 기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거짓말은 나쁘니까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 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지금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솔직한’ 120명의 주민들은 의사 루이스를 감동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시작한다. 나쁜 목적으로 남을 속이는 것이 사기라면 이들의 행각도 사기의 일종인지도 모른다. 도청장치까지 설치해가며 사생활을 캐고 교묘한 심리전까지 서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집 앞에서 매일 지폐를 줍고, 바다에서는 꽁꽁 얼어있는 물고기를 낚고, 주민들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운동경기와 음식까지, 루이스는 어째서 이 모든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였을까.
인간이란 가끔 뻔한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눈에 보이는 대로 믿고 싶어 한다. 루이스는 오염된 진짜 세상을 벗어나 ‘가짜 유토피아’를 만났고 그 행복한 환상을 굳이 의심하려 들지 않는다. 이 영화의 감독 프랑소아 풀리오는 “짙은 검은 바탕 없이는 순수한 하얀색을 볼 수 없듯이 순수한 하얀색 없이는 짙은 검은 바탕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섬사람들이 꾸며낸 행복, 그 요란한 바탕색을 통해서 루이스는 하얀 점들을 보게 된다. 바탕이 흰색이었다면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을 점들을. 화려한 껍데기를 통해 작은 알맹이를 발견하는 것, 영화의 참맛도 인생의 참맛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