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서 시작해 부동산 가격 폭등이 주도한 거품경제, 이어진 10년에 걸친 장기 불황 등 좋고 나쁜 여러 경험을 우리보다 앞서 치러낸 일본은 한국의 엘리트들이 여전히 이공계를 선망하던 1980년대 후반에 이미 이공계 기피 현상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이공계 푸대접의 현황과 그 개선책에 대해 쓰고 있는 '이공계 살리기'(사이언스북스)는 최근 같은 고민을 시작한 우리 사회가 참고할 만한 사례와 문제 해결의 힌트들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2002년 1월 1일 신년 기획으로 시작해 2003년 4월 26일까지 장기 연재한 '이공계 백서' 시리즈를 묶은 이 책은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주제이지만 신문 연재물 특유의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사례들과 짧게 이어지는 쉬운 문장들 덕에 강연을 듣는 듯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읽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비슷한 커트라인 선상에 있는 국립대 이공학부와 인문학부 졸업생의 임금을 분석한 결과 평생소득 격차는 집 한 채 값인 5200만엔(약 5억2000만원)에 이르지만 묘하게도 30세 이전 직장인의 평균 임금은 이공계가 오히려 높다는 통계를 인용, 승진에서 이공계가
밀리는 이유를 분석합니다. 또 청색 발광 다이오드 개발로 연간 1000억 엔의 막대한 매출을 올려줬음에도 개발보상금 20만원과 연봉 1억 원이란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던 나카무라 슈지 씨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런 푸대접이 이공계 위기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것 등이지요.
지난달 27일 공대교수들이 이공계 기피현상의 가장 큰 책임이 대학에 있음을 통감한다는 일성과 함께,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이공계 인재를 공급할 수 있는 '맞춤식' 전문 교육기관인 한국고등기술교육원을 설립했습니다. 기획예산처도 지난달 28일 장학금을 지원 받는 이공계 대학생을 올해 1만 명 수준에서 2008년 2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공산당 집행부 전원이 이공계 출신인 중국이나 과학보좌관 제도를 두고 강력한 과학 드라이브 정책을 펴는 미국과 비교하면 '과학 한국'의 미래는 여전히 암울하기만 합니다. 재정을 지원하는 정책만으로 '이공계 살리기'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라다 야스오 전 히로시마대 총장의 조언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지 모릅니다. "돈이 있으면 안 되는 연구란 없다. 필요한 것은 호기심,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