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안부를 묻고 온라인수업 준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개설한 SNS 단체대화방. 이곳이 학생들의 ‘생각 놀이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매일 아침, 지난밤 동안 별일 없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그것만 묻기 아쉬워 시작한 학급 활동이었다. 그리고 한 달여 후 첫 등교 개학 날, 책상 위에는 118쪽 분량의 수필집이 학생들을 맞았다.
이문호 광주 상무고 교사와 3학년 8반 학생들이 수필집 ‘교실, 그 상상력의 공동체’를 펴냈다. 4월 한 달간, 교사와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소통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 온라인 환경이 익숙한 학생들은 이 교사가 운을 띄우면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교정에 핀 꽃 사진을 학급 단체대화방에 공유한 게 시작이었다. 이 교사는 “봄꽃이 만발한 교정의 풍경을 함께 보고 싶었다”면서 “우리 친구들이 좋아하는 꽃은? 꽃말은?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답장했다”며 웃었다.
“노란 장미를 꼽으면서 꽃말은 ‘성취의 기쁨’이라고 말한 학생이 기억 남습니다. 학생들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와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어요. 설렜습니다. 온라인으로 오후 종례를 하면서 학생들의 응답에 종일 기뻤다고, 얼굴을 마주하고 있진 않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눠보자 제안했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3이지만, 이 교사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계절의 변화부터 꽃 이야기, 좋아하는 노래, 인상 깊었던 책, 꿈과 포부 등 주제는 다양했다. ‘장애인,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주제에 대해 떠오르는 한 마디’, ‘세계지구의 날을 맞아 지구를 위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 계기 수업도 글쓰기 활동으로 대신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도 있었다. 대학 입시에 대한 고민을 잠시 내려놓은 학생들에게서 또 다른 모습과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학급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밤새 글을 마무리해 보낸 학생, 경찰행정학과로 진학해 경찰이 되고 싶다던 학생…. 학생들이 보내온 글에는 말로 전하지 못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 교사는 박물관과 그림에 관심을 보인 학생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교실에서는 내성적인 편이라고 해요.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는데 글이 상당히 깊이 있었어요. 책을 읽은 후 모네가 그린 콘타리니 궁전에 대해 쓴 글이었지요. 설명을 부탁했더니, 콘타리니 궁전에 태극기 두 개가 걸려있다고 알려줬습니다. 모네가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그린 그림인데, 태극 문양이 선명하게 보인다면서요. 박물관과 그림에 이토록 깊은 관심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진로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았어요. 대화거리도 준비하고 있고요.”
이 교사는 만나지 못하는 동안 학생들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교실 밖 세상에서 자아를 찾아 여행 다녀온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등교 개학을 앞두고 글 작품을 모아 한 권으로 엮었다. 그리고 지난달 20일, 결과물을 학생들에게 선물했다. 그는 “온라인개학 상황은 우리에게 반전의 시간이었다”고 귀띔했다.
“등교 개학 날, 학생들의 표정이 좋았어요. 특별한 자기소개 없이도 어우러져 흐트러짐 없이 잘 생활하고 있지요. 이번 경험으로 학교라는 울타리가 아이들을 네모난 틀에 가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온라인수업 상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거든요. 이 아이들이 입시를 살짝 내려두면 어떨까, 궁금해질 정도였죠. 친구, 선생님을 못 만나고 혼자 있는 시간은 스스로에 몰입하고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됐을 겁니다. 삶이라는 시간 여행을 설계해보자고 말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