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신문 독자 중에 ‘만공선생’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1982년 테이프를 끊어 22년 동안 빠짐없이 지면을 통해 선생님과 함께 웃고 울어온 ‘만공선생’의 작가 신문수 화백(65)이 만화 인생 42년 만에 첫 전시회를 갖는다.
1차 전시는 18∼22일 서울 역삼동 문화콘텐츠센터에서, 자리를 옮겨 2차는 28일부터 내년 4월28일까지 경기도 이천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열리는 이 번 전시회에서는 ‘원시소년 똘비’, ‘포졸 딸꾹이’, ‘허풍이의 세계여행기’ 등 40여 년간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모았던 120여 점의 신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막상 전시회를 열고 보니 속살을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 쑥스럽네요.”
서울 역삼동 문화콘텐츠센터 전시관에서 만난 신 화백은 나이와 관록이 무색하리만치 상기된 얼굴로 소회를 밝혔다.
고등학교 시절 동양화가를 꿈꿨던 신 화백은 64년 만화잡지 ‘로맨스’를 통해 ‘너구리 형제’로 만화계에 첫발을 디뎠다. 그 후 '도깨비감투' '로봇 찌빠' 등 히트작을 내며 꾸준히 명랑만화를 그려온 신 화백은 어린이 신문과 잡지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명랑만화의 제왕'으로 군림해왔다.
“60∼70년대에는 어깨동무와 신세계 등 어린이 잡지의 전성기였는데 지금은 어린이 만화를 실어주는 어린이 잡지가 하나도 없어요.”
이처럼 불황을 겪고 있는 우리 만화계의 수장(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만큼 신 화백은 한국 만화를 살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세계만화대회’에 참석, 내년 제7회 대회를 한국에 유치하는 데 성공한 것도 그의 이런 노력의 결실이다.
“세계만화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정지 작업을 해주는 것이 금년 말로 임기를 마치는 협회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길이라고 생각 한다”는 신 화백은 요즘도 ‘상용한자 1800’이라는 한자만화 단행본을 펴낸 것을 비롯, 10여 군데에 연재만화를 그리는 등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만공선생’을 아껴주시는 선생님들이 너무나 고맙다”며 “이렇게 한결같은 독자들의 성원덕분에 아직도 내가 현역으로 그릴 수 있는 것 아니겠냐“는 신문수 화백.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다가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그 것이 나에겐 최고의 행복”일 것이라며 수줍게 웃는 신 화백의 미소엔 아직 ‘로봇 찌빠'와 함께 놀던 ‘팔팔이’의 천진함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