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일 년 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연하장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종이 카드에 손글씨로 꾹꾹 눌러가며 정성스럽게 마음을 담아냈다. 연하장에 붙일 크리스마스 씰의 디자인을 감상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요즘, 어느 때보다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다. 본지는 ‘크리스마스 씰 모금 캠페인’에 동참하는 의미로 대한결핵협회와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생애 첫 기부의 추억
학창 시절, 크리스마스 씰이 나오는 건 겨울방학이 다가온다는 걸 의미했다. 대한결핵협회에서 발행하는 크리스마스 씰은 세계 결핵 퇴치 운동을 상징하는 모금사업이다. 씰을 사는 것만으로도 기부에 참여할 수 있어 ‘생애 첫 기부’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크리스마스 씰은 1904년 덴마크에서 처음 발행됐다. 코펜하겐의 우체국 직원이었던 아이날 홀벨은 많은 어린이가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러다 연말이면 쌓이는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정리하면서 우편물에 동전 한 닢짜리 씰을 붙여 보내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씰을 판매한 동전을 모으면 결핵 기금을 마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덴마크 국왕 크리스찬 9세의 지원을 받아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이 발행됐고, 미국과 스웨덴, 독일, 노르웨이 등 주변국으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전파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캐나다 선교 의사인 셔우드 홀이 1932년에 처음 발행했다. 1949년 셔우드 홀을 도왔던 문창모 박사의 주도로 한국복십자회에서 씰을 발행했고, 1952년에는 한국기독의사회에서 이어갔다. 이후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하면서 범국민적인 크리스마스 씰 모금 운동이 펼쳐졌다.
결핵 퇴치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매년 2만 3000여 명의 결핵 환자가 발생하고, 한해 1600여 명이 결핵으로 사망하고 있다. OECD 가입국 중 결핵 발병률 1위, 사망률 2위다.
장승준 대한결핵협회 STOP-TB(결핵퇴치) 운동본부장은 “호흡기 감염병인 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했다”면서 “모금으로 조성된 결핵 퇴치 기금은 결핵환자의 발견, 치료, 지원, 조사연구 등 결핵 퇴치 전 분야에 걸친 사업에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펭수’가 주인공
그동안 크리스마스 씰은 독립운동가, 한반도에 서식하는 동·식물, 제주도와 해녀 문화 등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시대정신을 담아냈다. 기부자의 수요를 충족하고 실용성을 높이기 위해 씰에 그치지 않고 매년 새로운 굿즈(goods)를 선보이고 있다. 대한결핵협회가 발행한 크리스마스 씰은 국제항결핵연맹(IUATLD)이 주최하는 국제 크리스마스 씰 콘테스트에서 꾸준히 입상하고 있다.
역대 크리스마스 씰 소재 중 특히 인기를 끌었던 건,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와 애니메이션 뽀로로와 친구들이었다. 2016년에 발행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0인은 우리나라의 독립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주목받았다.
올해는 ‘자이언트 펭TV’로 인기를 얻은 ‘펭수’가 크리스마스 씰의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대한결핵협회는 씰 소재 공모를 통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펭수를 씰에 담았다. 남극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펭수의 모습을 표현했다. 펭수 크리스마스 씰과 함께 올 한 해 힘겨웠던 일들은 떨쳐내고 새해에는 희망을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크리스마스 씰 외에도 그린씰(키링), 머그컵, 컵받침, 펜, 엽서 등 다양한 모금 상품이 출시됐다.
경만호 대한결핵협회 회장은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 국민 모두가 예방수칙을 준수하는 모습에서 결핵을 비롯한 호흡기 감염병을 퇴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면서 “소액으로 참여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씰 모금을 통해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된 결핵환자를 적극 지원해 결핵 없는 대한민국 만들기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크리스마스 씰 집중 모금 기간은 오는 2021년 2월까지다. 대한결핵협회 쇼핑몰(loveseal.knta.or.kr)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smartstore.naver.com/christmas-seal), 카카오톡 스토어(store.kakao.com/christmasseal) 등 온라인 모금처와 전국 우체국 창구, GS25 편의점, 각 학교·직장 우편 모금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
<역대 인기 크리스마스 씰>
▲2009년 ‘김연아의 파이팅 이모티콘’
2009년에는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를 모델로 ‘김연아의 파이팅 이모티콘’을 발행했다. 화제가 됐던 피겨 동작과 국민에게 보내는 이모티콘 형식의 응원메시지를 야광으로 넣어 낱장의 씰을 구성했다. 김연아 선수가 각종 세계선수권대회 및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1위를 하면서 2009년 씰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그 인기는 이어지고 있다.
▲2011년 뽀로로와 친구들이 함께하는 겨울 스포츠
2011년 크리스마스 씰은 ‘뽀통령’이라 불리며 어린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애니메이션 ‘뽀로로와 친구들’을 소재로 제작했다. 캐릭터들이 다양한 겨울 스포츠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맞물려 더욱 인기를 끌었다.
▲2016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0인
광복회와 함께 독립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들을 선정해 ‘독립을 향한 열망-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0인’ 씰을 발행했다.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등 10인의 초상이 담긴 낱장에 독립운동 역사에서 의미 있는 장면들을 배경으로 그려 넣어 의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