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자기교육이다
한스 G 가다머 지음/ 동문선
1999년 5월 19일 독일의 유서 깊은 도시 하이델베르크 인근의 작은 도시 에펠하임에 있는 디트리히 본회퍼 김나지움(인문학교)이 개교 100주년을 맞아 초청한 연사는 당시 99세의 노(老)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1900~2002)였다. 연단에 오른 가다머는 원고도 없이 간단히 준비해온 메모를 참조하며 증손자뻘 되는 학생들과 그의 육성을 듣고자 학교를 방문한 후배 학자들을 상대로 교육에 관한 자신의 응축된 생각을 1시간 남짓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30쪽 분량도 채 안 되는, 책이랄 것도 없는 이 작은 문건이 파문을 던진 것은 너무나 평범하지만, 그 안에 핵심을 찌르는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다머는 “교육은 언제 시작되는 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을 배우기 이전에 이미 아기는 뭔가를 잡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스러워하며 그때 최초의 행복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기는 집에 있는 것과 같은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기들은 자기가 극복하기 힘든 낯선 환경에 처하면 심하게 울게 됩니다.”
‘집에 있는 것과 같은 편안함과 낯선 환경의 도전’은 인간이 성장하는 매 단계에서도 반복된다는 것이 가다머의 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부모가 모두 직장에 나가서 아이들이 TV 앞에 방치되는 상황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대중매체가 인간형성에 줄 수 있는 위험성을 우리는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올바른 인간성을 길러주는 데 있어 자신의 고유한 판단력을 계발하고 실행하도록 가르치는 일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가다머는 이처럼 교육의 핵심이 ‘자기교육, 자기도야’에 있다고 말한다. 자기 도야는 부단한 자기 연마, 능력 개발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능력이 지속적인 책임감으로 승화되지 못할 때는 아도르노의 표현처럼 ‘어설픈 교육’으로 남고 만다고 가다머는 설명한다. 성공적인 능력의 개발과 성숙한 책임 의식의 실천은 오로지 대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때문에 가다머는 강연에서 줄곧 ‘대화를 통한 교육’을 강조한다. 대화는 타인과의 관계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가다머는 자기 도야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타인과의 공동체적 관계’ 역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 친구, 동아리 활동의 예를 들어가며 가다머는 자기교육에서 타인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설파한다.
외국어 학습도 예외는 아니다. “교재를 읽거나 쓰는 식의 외국어 습득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방법은 대화를 통해서입니다. 그래야 낯선 감을 느끼고 대화를 통해 극복함으로써 다시 ‘집에 있는 것과 같은 편안함’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가다머는 교육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어떤 결과물을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로 하여금 자기활동을 통해 자신의 결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능력을 길러주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번역자인 손승남(순천대 교육학과)교수는 이 강연의 의미를 “가다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기부정의 계기보다는 결국 어떻게 스스로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느냐, 즉 정체성의 문제”라고 풀이한다. 즉 인간은 고향 같은 편안함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게 교육, 도야(Bildung)의 핵심이며 그것은 다름 아닌 자발적 열정과 올바른 판단력을 청소년들이 갖도록 도와주는 것에 있다는 해석이다.
요즘처럼 혼란한 시대일수록, ‘집에 있는 듯 편안한 느낌’을 지니며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과 비전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이 담당해야할 절체절명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숱한 교육 문제들의 근원이 ‘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것’에서 기인하는 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