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만약 이 세상에서 모두가 눈이 멀고 단 한 사람만이 보게 된다면’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제 눈이 보이는지 계속 확인하였습니다.^^ 눈을 잃는다는 것은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인간관계, 문화, 생존 방식... 작가 조제 사라마구는 이 글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소유를 돌아보고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며 차 안에 있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멉니다. 눈이 멀게 되는 이상한 전염병은 급속도로 퍼져나가 도시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한 도시 전체에 ‘백색 실명’이라는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퍼지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소설에서 ‘실명’이라는 것은 단순히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산업 사회에서 생존 양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된 눈먼 자들, 이들을 향해 무차별하게 총격을 가하는 군인들, 비정한 정치인, 특히 총으로 무장한 집단이 저지르는 야만적 폭력은 도덕성이 붕괴된 인간의 끔찍함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가 보여주는 희생과 헌신은 인간의 선함을 기억하게 합니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며 사람들을 덜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그녀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손을 맞잡고 나아가야 할 수 있다고 ‘연대 의식’을 강조합니다. 혼란스러운 수용소의 끔찍한 고통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기에 진정한 인간애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의사의 아내는 일어나 창으로 갔다. 그녀는 쓰레기로 가득 찬 거리,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이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내 차례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p. 463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소소하고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평범한 행복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 깨닫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 새봄에는 예쁜 꽃을 보러 친구들과 나들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조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 2002(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