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운영되는 교실이 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 직업을 가졌을 때 받을 수 있는 월급, 신용등급 등을 고려해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일한 만큼 월급을 받고, 세금도 내야 한다. 저축, 투자도 하고 사업자등록을 해서 가게도 차린다. 모든 경제 활동은 교실에서만 쓸 수 있는 ‘학급 화폐’로 이뤄진다.
경제교육 유튜브 채널 ‘세금 내는 아이들’에 등장하는 교실은 한 나리를 축소해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생산과 소비, 투자 등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돈의 흐름과 개념을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경험’과 ‘활동’을 중심으로 알려준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한다고 해서 간단하게 봐서는 안 된다. ‘임금 체불’ ‘세금 횡령’ ‘물가 상승’ ‘실업률 상승’ ‘주식투자’ 등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어른인 사회 초년생이 기초 경제 개념을 익히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학급 경영에 경제교육을 접목한 건 옥효진 부산 송수초 교사의 아이디어다.
옥 교사는 학급 경영 사례를 소개, 공유하기 위해 지난해 유튜브 채널 ‘세금 내는 아이들’을 개설했고, 현재 구독자 10만 명, 누적 조회 수 1100만 뷰를 넘어섰다. 1년 동안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과 학생들의 반응, 성장하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덕분이다. 그는 최근 학생들과 경험한 학급 화폐 활동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경제 동화 ‘세금 내는 아이들’도 펴냈다. 옥 교사는 “아이들이 경제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하는 게 목표”라고 귀띔했다.
“사회 초년생 때 월급을 받았는데, 아는 게 없었어요. 우리 아이들도 사회에 나가자마자 같은 경험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회는 연습할 기회를 주지 않아요. 바로 실전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알려주고 연습하게 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담임을 맡았을 때 학급을 어떻게 운영할까, 고민하다가 경제교육이 떠올랐다. 교실에서만 쓸 수 있는 학급 화폐를 만들고, 경제 활동을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경제·금융 지식을 배울 수 있게 구성했다.
학생들을 매달 초 직업을 정한다. 직업에 따라 책정된 월급에서 소득세, 건강보험료, 전기요금 등 각종 세금을 원천징수하고 실수령액을 받는다. 받은 돈으로는 급식 먼저 먹기, 칠판 낙서하기 등 각종 쿠폰과 과자, 교실 내 좋은 자리 등을 살 수 있다. 소비 대신 저축이나 투자를 선택하기도 한다. 투자 상품은 ‘교사의 몸무게’다. 교사의 몸무게가 늘면 투자자들의 수익이 늘고, 줄면 수익도 줄어든다.
옥 교사는 “투자 활동은 저축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최근에 도입했다”면서 “투자는 수익률이 높지만,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 정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투자를 고민하거나 이미 투자한 학생들은 선생님이 뭘 먹었는지, 저녁 약속이 있는지를 물어온다”고 덧붙였다.
옥 교사만의 원칙도 있다. 학생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알려줄 때는 학급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다. 줄을 잘 선다고 해서 학급 화폐로 ‘보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덕분에 ‘선생님, 이거 하면 얼마 주실 거예요?’라고 묻는 학생은 없다. 옥 교사는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과 학생으로서 지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는 구분 짓는다”면서 “이 활동의 목표는 돈 관리가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데 있다”고 말했다.
교사의 유튜브 활동에 관한 생각도 전했다. 옥 교사는 “교사들의 유튜브 활동은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면서 “활동 자체를 위축시키기보다 온라인 수업과 교육활동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학급 화폐 활동에 관심 있는 교사들을 위해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모든 활동을 도입하려고 하지 말고 교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면서 “직업에 따라 월급을 주고, 소비처를 마련하고 저축하는 정도로 근로 소득에 따른 돈 관리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했다.
“경제·금융교육을 포함해 우리 삶에 필요한 교육이 학교에서 다뤄지면 좋겠어요. 교과서로만 배우는 게 아니라 직접 아이들이 경험하면서 배울 수 있는 활동 중심 교육이요. 아이들은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들을 더욱 잘 이해하거든요. 지금은 고학년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더욱 탄탄하게 구성해서 저학년을 대상으로도 적용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