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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런 직업도 있었다?!

<조선잡(雜, JOB)사>

우리는 흔히 큰 사건이나 왕들의 업적을 중심으로 역사를 떠올리곤 한다. 역사를 기록하고 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사건들과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는 특정한 몇몇에 의해, 몇 가지 사건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대다수의 백성은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하고, 생업을 이어가며 역사 속의 작은 물결을 이뤄왔다.

 

이 책의 주제는 조선의 직업이다. 예순일곱 가지 직업을 가려 뽑아 하는 일과 관련 일화를 정리했다. <조선잡사>는 ‘잡(job)’의 역사이며, ‘잡(雜)’스러운 역사이기도 하다. 갖가지 직업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이 책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아재 개그’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이만큼 이 책의 성격을 잘 알려 주는 제목을 찾지 못했다. 문명·국가·민족과 같은 거대 담론이 지배하는 역사 연구에서 직업의 역사는 여전히 잡스러운 역사인 탓이다. -4p

 

책의 서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조선의 다양한 직업들에 대해 풀어 놓고 있다. 다양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직업들을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 위트 있는 문장들로 우리에게 전달한다. 요즘의 직업들과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어 고리타분하다는 생각보다는 ‘그 시대에도 그런 직업이?’라는 반응을 자연스레 이끌어 낸다.

 

 

 

수모는 수식모(首飾母)의 준말이다. 우리말로는 머리 어멈, 지금의 헤어디자이너다. 화장과 의상도 담당했으니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도 겸했다. 혼례가 있으면 신부가 입을 옷과 장신구를 빌려주고, 예식을 원활하게 진행하는 웨딩플래너 역할도 맡았다. 수모는 조선시대 혼례에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중략)… 이덕무의 <김신부부전>이라는 결혼식 기록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면 수모가 합환주를 마시게 한 다음 덕담을 하며 축복한다. 수모는 신부의 도우미 역할은 물론 신랑 신부에게 조언하고 축복하는 주례 역할도 맡았던 셈이다. 전통 혼례는 주례가 없지만, 굳이 찾는다면 사회자에 해당하는 집사보다 수모가 주례에 가깝다.  -19p

 

첫 장에서는 여성들의 직업을 소개하고 있다. 유교사회에서 혼례의 주례를 여성이었던 수모가 담당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이 밖에도 염색을 업으로 삼는 ‘염모’, 변방 군관의 가사 도우미 역할을 했던 ‘방직기’, 화장품을 판매하던 ‘매분구’에 대한 설명도 이어진다. 제주의 아픈 수탈 역사를 담고 있는 ‘잠녀(해녀)’에 대한 소개도 사료와 함께 제시된다.

 

큰 칼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술 한 잔 들이켜고 입으로 뿜어 칼날을 적신다. 사극을 통해 익숙해진 망나니의 이미지다. 한자로는 회자수라고 한다. 회자는 관우가 휘두르는 청룡언월도와 비슷하다. 협도라고도 한다. 회자수는 붉은 옷차림에 붉은 두건을 쓰고 이 무기를 들고서 대장을 호위한다. 실전용이 아니라 위엄을 과시하고 공포를 심어 주는 의장용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회자를 사형도구로 사용하는 바람에 회자수가 망나니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중략)… 망나니라는 우리말은 도깨비라는 뜻의 ‘망량’에서 나왔다고도 하고, 난동을 뜻하는 ‘망란’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망나니는 원래 ‘막란’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사형 집행자의 대명사로 굳어진 것이라 한다. 무시무시한 사형 집행자 ‘망나니’는 원래 어느 집 막내아들이었던 것이다. 한 집안의 막내아들이었던 그는 무슨 죄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운명이 되었을까. -46p

 

으스스한 사형 집행인의 어원에 관해서도 설명하며 그들이 직업인으로서 가졌던 고뇌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이처럼 두 번째 장에서는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극한직업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전쟁이나 기근으로 길에서 죽은 사람을 누가 수습했을까? 바라보기조차 힘든 광경 속에서 손수 시신을 수습해 주는 매골승이 있었다. 매골승의 기원은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승려는 종교인이자 의술·천문·풍수 등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보유한 전문인이었다. 병든 사람들은 치료를 위해 의술이 뛰어난 승려를 찾기도 했다. 속세와 떨어진 사찰은 병자의 치료와 요양에 적합한 곳이었다. 불행히 죽더라도 극락왕생을 빌며 임종을 맞을 수 있었다. -84p

 

전란과 기근으로 많은 백성이 희생된 조선 중기, 그들의 시신을 수습해준 ‘매골승’의 이야기는 직업을 넘어 종교적 헌신과 사명을 잘 보여준다.

 

종로 담뱃가게에서 소설을 듣던 사람이 영웅의 실의하는 대목에 이르러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더니 담배 써는 칼로 소설책 읽어주는 사람을 찔러 그 자리에서 죽였다고 한다(<정조실록> 14년, 8월 10일) …(중략)… 전기수는 소설 낭독 전문가였다. 전기수는 억양을 바꾸고 몸짓을 곁들여 청중이 소설책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중략)… 전기수는 저잣거리에 좌판을 깔거나 담뱃가게 한쪽에서 목청 좋게 소설책을 낭독했다. 전기수가 소설책을 펼치면 누구나 원하는 시간만큼 들었다. 표를 받지도 않았고 좌석이 지정되지도 않았다. 멀찍이서 듣고 떠나도 그만이었다. 전기수의 낭독은 말 그대로 공짜였다. 그렇다면 돈은 어떻게 벌었을까? 돈을 얻는 법이라 하여 ‘요전법’이라 하는데, 요전법의 핵심은 침묵에 있다. 심청과 심봉사가 다시 만날 때, 이몽룡과 춘향이 옷고름을 풀 때처럼 다음이 몹시 궁금한 대목에서 전기수는 돌연 침묵했다. 청중은 몹시 답답했을 터, 앞 다투어 돈을 던졌다. 전기수는 돈이 웬만큼 쌓였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목청을 돋우며 다시 맛깔난 낭독을 선뵈었다. -120p

 

책에 소개된 직업 중 가장 흥미 있었던 대목인 ‘전기수’. 그들이 읽기로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던 것이 침묵에 있었다는 점은 요즘의 드라마와 닮아 있다. 이렇게 흥미를 유발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능력은 아주 중요한 연출 능력이다.

 

가장이 금하지 못하니 부녀자들은 가체를 더 사치스럽게 하고 더 크게 만들지 못할까 걱정한다. 근래 어떤 집의 열세 살 난 며느리가 가체를 높고 무겁게 만들었다. 시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자 며느리가 갑자기 일어서다가 가체에 눌려 목뼈가 부러졌다(이덕무, <청장관전서>) …(중략)… 조선사람은 화려했다. 남자는 수정을 잇댄 갓끈과 옥으로 만든 관자·귀걸이로 꾸몄다. 여자는 풍성한 가체(가발)와 현란한 비녀·노리개로 치장했다. 길고 화려한 갓끈, 높고 풍성한 가체는 요샛말로 잇템, ‘꼭 갖고 싶은 아이템’이었다. -150p

 

가장 심한 사치 품목인 ‘가체’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사극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머리에 올리는 가발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보편적으로 애용되었고 만드는 데 엄청난 공이 들어가 가격도 비쌌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사치 품목으로 간주되었고, 국법으로도 제한했다는 내용도 함께 제시되고 있다.

 

<조선잡사>에서 제시하고 있는 각각의 직업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름의 애환이 담겨 있고 그 안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에게 진로와 직업교육을 다양한 차원에서 전개하고 있지만 많은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많은 정보 탓일까? 직업과 관련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작 자신의 길에 대해서는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직업의 역사를 재미있게 함께 읽어본다면 자신의 길에 대해서도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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