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은 톰 행크스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현빈과 탕웨이가 주연한 영화 〈만추〉로 유명한 도시다. 스타벅스 1호점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먼저 시애틀 추장에 대해 이야기하자. ‘시애틀’은 워싱턴 주가 되기 이전 이 지역 원주민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1852년 미국 정부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이 지역에 거주하던 인디언 추장에게 땅을 팔 것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이에 추장은 “땅은 신성한 것, 하늘과 마찬가지로 팔고 살 수 없다. 땅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의 것”이라고 써서 답장했다. 당시 미국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이 편지에 감동해 그의 이름으로 도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시애틀’에는 ‘조정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커피와 록의 도시 시애틀
시애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커피 향이 여행자를 반긴다. 시애틀은 미국에서 커피로 가장 유명한 도시이자, 스타벅스가 처음으로 문을 연 도시다. 1971년 시애틀의 웨스턴 애비뉴에 처음 문을 연 스타벅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 자리한 이 원조점은 1977년에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 세계 스타벅스 중에서 가슴을 드러낸 갈색 인어로고를 달고 있는 유일한 가게다.
가게는 작다. 20평 남짓. 하지만 원조의 맛을 찾아온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게 밖까지 줄을 선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린다. 아침 9시가 넘어 찾으면 적어도 20분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다지 지루하지는 않다. 스타벅스 1호점 앞은 거리 악사의 명당이다. 하루에 스무 명 남짓한 악사들이 돌아가며 연주한다. 이들의 활기찬 연주를 듣다 보면 어느새 자기 차례가 돌아온다.
시애틀 커피의 진수는 스타벅스가 아닌 캐피톨 힐(Capitol Hill)이라는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이 시애틀을 커피의 도시라 부르는 진짜 이유는 이곳에 자리한 수많은 독립 카페들 덕분이다. 이 카페들은 직접 해외의 유명 커피산지에서 농장 단위로 원두를 구매한 후, 독특한 커피들을 재생산해서 공급한다. 캐피톨 힐은 우리나라 홍대 비슷한 분위기다. 예술가와 게이, 자유분방한 캐피톨 힐 사람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여유로움이 가득한 곳이다. 헌책방도 많고, 거리도 잘 정비되어 있어 한나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애틀을 여행해보자. 시애틀을 찾은 이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은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이다. 시애틀의 랜드마크다. 196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였던 시애틀 센터에 자리한 곳으로 약 높이 185m의 전망대다. 이곳에 서면 시애틀 시내뿐만 아니라 푸른 태평양과 유니언 레이크, 흰 눈을 덮어쓴 해발 4,392m의 레이니어 산봉이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스페이스 니들 옆에는 EMP(Experience Music Project)가 자리한다. 록 마니아들 사이에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시애틀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태어난 곳이다. 1942년 시애틀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 영국 런던에서 만 27세로 요절한다. 주요 무대활동 4년, 스튜디오 음반 3장 발매. 지미 헨드릭스의 약력은 이것이 전부이지만, 그는 영원한 전설로 남아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흰색 팬더 스트라토캐스트가 반긴다. 헨드릭스가 생전에 연주했던 기타다. 그 뒤로는 500여 개의 기타로 만든 대형 조형물이 시선을 빼앗는다. 너바나의 흔적도 더듬을 수 있다. 이들의 손때 묻은 악기·의상·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EMP 박물관 옆에 자리한 치훌리 가든 & 글라스 전시관은 데일 치훌리(Dale Chihuly)의 유리 조형물과 그림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치훌리는 세계적인 유리 조형의 거장이다. 미국 최초의 무형문화재인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주요 도시에 200개 이상의 유명 박물관과 정원에 전시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그의 전시가 열린 적이 있다고 한다. 전시관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유리공예 시리즈와 개인 컬렉션까지 볼 수 있다.
치훌리 전시관 가까이에는 라이드 덕을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다. 라이드 덕은 시애틀에서만 탈 수 있는 시티투어 버스다. 오리모양으로 생긴 수륙양용 버스다. 90분간 시애틀 시내 곳곳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본다. 라이드 덕, 이거 참 재미있다. 운전사는 차만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각 여행지에 대한 해설도 곁들인다. 복장도 요란하다. 우스꽝스러운 모자로 탑승객을 즐겁게 한다. 하드록 카페 앞을 지날 땐 시애틀의 록 역사를 설명해준다. 그냥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요란한 록 음악을 귀청이 떨어질 듯 크게 튼다. 스타벅스 앞을 지날 때는 커피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준다. 버스에 탄 사람은 운전사의 리드에 따라 박수도 치고, 노래도 함께 한다. 투어 내내 차가 들썩인다. 길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손을 흔들며 호응을 해준다.
시내를 빠져나온 라이드 덕은 레이크 호수(Lake Union)로 풍덩 빠져든다. 차에서 배로 변신. 호수는 마냥 평화롭다. 유유자적 카누의 노를 젓는 사람들. 부드러운 가을 햇빛이 수면 위로 내려앉고 있다.
유니언 호수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톰 행크스의 보트 하우스가 있던 곳. 톰 행크스는 밤이면 쓸쓸히 베란다로 나와 호수를 바라보곤 했었다. 유니온 호수에는 아직도 선상 가옥이 있는데, 이는 1890년대 어부와 선원들이 처음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것. 1930년대 대공황 때 세금을 아끼고 값싼 주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 2천 가구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지금도 5백 채 정도가 남아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어디를 가나 시장 구경은 빼놓을 수 없다. 시애틀에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이다. 시내 1번가라 할 수 있는 퍼스트 애비뉴와 파이커 스트리트 사이 엘리엇 만을 끼고 위치해 있다. 방금 잡아 올린 신선한 생선과 농부들이 직접 재배해 가져온 과일과 채소, 향기를 듬뿍 머금은 꽃, 직접 만들어 온 미술품 및 공예품 등이 가득한 곳이다.
시장은 1907년 문을 열었다. 원래 어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종합시장으로 변모해 시애틀 시민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80여 년 전에 세워진 네온사인 시계는 지금도 멀리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생선가게 ‘파이크 플레이스 피시 마켓’에는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이 가게는 ‘나는 물고기’로 유명하다. 막 판매된 팔뚝만 한 참치가 점원의 손에서 손으로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입구에 ‘레이철’이라는 대형 돼지저금통을 만들어 놓고 기부를 받아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도 한다.
미서부 와인의 진수를 맛보다
시애틀 여행이 즐거운 또 다른 큰 이유는 최고의 와인이 있기 때문이다. 시애틀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우딘빌은 샤토 생 미셸과 콜롬비아 와이너리가 들어선 이후, 워싱톤주 와인의 허브로 재탄생했다. 시애틀이 자리한 워싱턴주는 캘리포니와주·오리건주·뉴욕주와 함께 미국에서 와인을 생산해내는 지역. 캘리포니아 와인은 우리에게 이미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워싱턴 와인도 최근 들어 그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워싱턴주는 동쪽의 야키마 밸리에 포도밭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강우량이 극히 적어 인근 콜롬비아 강에서 강물을 끌어다 관개를 한 후 포도를 생산하는데, 이곳에서 생산된 포도는 시애틀로 옮겨져 와인으로 재탄생한다. 우딘빌에 자리한 수많은 와이너리 가운데 ‘샤토 생 미셸(Chateau Ste. Michelle)’은 시애틀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다. 매년 25만 명 이상이 찾는다고 한다.
“샤토 생 미셸 포도밭은 캐스케이드산맥 동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맥이 서쪽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을 막아주는 데다, 연간 강수량이 200mm 이하입니다. 위도가 높아 캘리포니아보다 여름 평균 일조량이 2시간 이상 길죠. 건조한 날씨와 척박한 토양이 포도의 풍미를 높이고, 따뜻한 기후와 일조량은 포도를 완숙하게 하죠. 여기에 큰 일교차로 인한 서늘한 기온은 산도가 탁월한 와인을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그 결과 보르도·부르고뉴와 견줄만한 와인이 탄생한 것입니다.”
시애틀의 또 다른 별칭은 ‘숲의 도시’다.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올림픽 국립공원(Olympic National Park).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숲의 몽환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트와일라잇〉, 〈트윈 픽스〉, 〈다크 엔젤〉 등의 초현실 판타지 영화들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곳은 허리케인 릿지(Hurricane Ridge). 해발 1,600m의 전망대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서는 올림픽 국립공원 내의 최고봉인 올림푸스산(2,430m)을 바라볼 수 있다. 길을 가며 심심찮게 만나는 야생 노루가 국립공원에 왔음을 실감케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