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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022 교단수기 동상> 1990 인연은 사랑을 타고

 

1990년 3월 손이 꽁꽁 시리도록 추운 날.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고등학교 입학을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무서운 인상으로 선생님들이 한 손에는 지시봉을 들고 앞에 서 계신 모습, 반별로 줄 서라는 소리, 여기저기서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다. 1학년 7반 담임선생님의 발표가 시작됐고 삐쩍 마른 담임선생님을 졸졸 따라 교실로 이동했다. 한눈에 봐도 얼굴은 까매서 시골에서 금방 올라온 듯한 모습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계셨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선생님이 앞에 서 계신데도 불구하고 시끄러웠다. 순간 칠판을 탁탁 치며 특유의 충청도 사투리를 쓰며 선생님의 소개가 시작됐고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됐다.
 

그 시절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던 나는 우울한 하루하루에 진로에 대한 고민은 사치가 될 뿐이었다. 그저 고등학교를 아무 이상 없이 졸업하고 대학교에만 합격하면 되겠거니 하는 마음만 간절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입학력고사를 우리 학년까지만 치르고 다음 해부터는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는 시절이어서 합격이 아니면 당장 일할 곳을 찾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고등학교 생활 내내 항상 마음이 무겁고 대입에 대한 공포가 가득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원선거가 있던 날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친구들을 추천하라고 했고, 내 이름이 거론됐다. 항상 조용하고 탈 없이 학교에 다니기를 바랐던 나인데 반장추천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선거가 시작됐고, 나는 1년간 반장으로 활동했다. 누군가 앞에서 공약을 발표하고 이끌어가기엔 너무 여유 없는 나였는데 담임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반장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좀 있습니다. 딱 보면 잘할 수 있을지 알 거 같거든요."
 

3월이 시작되고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이 시작됐다. 예전에 뵈었던 담임선생님과는 다른 질문들이 오갔다. 관심 있는 분야가 뭔지, 뭘 좋아하는지, 그래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와 같은 질문들이었다. 항상 3월이 되면 받았던 질문은 부모님 뭐하시니? 방은 몇 개야? 성적은 몇 점대였니? 이런 질문들을 할 거라 믿었는데 전혀 다른 질문에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더라~ 내가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있었나?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들이었다. 대학교에만 합격하면 된다 생각했는데 내 관심 분야를 물어보시니 당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담임선생님의 질문은 그 시대보다 20년 뒤를 바라보는 질문인 듯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뭔지 생각해보고 너의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라"는 당부와 함께 상담이 끝났다.
 

1학기 1회 고사 시험이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커다란 기타 하나를 들고 들어오셨다. 고생했다고 노래를 불러주신다는 것이었다. 파격적인 담임선생님의 행동이 신기하기만 했다. 담임선생님이라 하면 어렵고, 안 만나고 싶고, 말하기 어려운 존재로 기억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두툼한 입술로 노래를 불러주시는데 기타 치는 손가락이 이상했다. 손가락이 구부정했다. 저런 손으로 가능할까? 라는 의심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셨다. 앙코르 소리에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선생님은 손가락이 바보야. 그런데 기타가 치고 싶은 거야. 다들 말리더라. 그런 손으로 기타 못 친다고. 그래서 몰래 연습했지. 기타 못 친다고 하는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데 되더라. 나 같은 사람도 되니까 너희들은 못 하는 일이 없을 거야. 시험 못 봤다고 아무 일 안 생긴다. 대학은 선생님이 보내줄 테니까 걱정 말고 다시 공부해."
 

여기저기 앙코르 소리와 멋있다는 소리가 가득했다. 내가 봤던 선생님 중에 가장 멋있는 진짜 선생님이었다. 한 번도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선생님 머리 뒤로 후광이 비치는 모습을 처음 경험했다. 그렇게 어렴풋이 나도 저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진로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2학년으로 진급을 하면서 지금 담임선생님이 또다시 담임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학년이 되어서도 1학년 때 챙겨주셨던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해 자주 찾아가 상담하곤 했다.
 

어느 시험이 끝난 오후, 친구들과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그만 발목이 90도로 꺾이는 사고가 났다. 식당일로 바쁘신 부모님은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조차 힘들다는 걸 알았기에 붕대와 파스로 하루를 버티고 다음 날 절뚝거리며 학교에 갔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셨는지 저녁 급식이 끝나고 따로 부르셨다. 갑자기 자전거에 태우시더니 병원에 가자고 말씀하셨다. 괜찮다고 말씀드려도 한 번 발목 다친 거 제대로 치료 안 하면 평생 고생이라고 하셨다. 부모님도 바쁘셔서 못 갔던 병원을 선생님이 데리고 가신다는 말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감사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발목 검사에 한방병원에서 침 치료까지 완벽하게 치료를 끝내자 걷기가 훨씬 수월했다. 선생님 덕분에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고3이 되었고,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상담할 곳도 없고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런 마음을 아셨는지 교무실로 조용히 부르셨다. 진로는 정했는지 어느 학과에 진학 예정인지 궁금하셨나 보다. 당당하게 사범대에 진학하겠다고 했고, 단번에 합격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등록금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힘들면 언제라도 얘기하라는 든든한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4년간 장학생으로 대학 생활을 하면서 간간이 힘들 때마다 선생님을 생각했다. 졸업과 함께 교단에 섰다. 25년간 교사로 생활하면서 교사 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고등학교 때 뵈었던 담임선생님의 영향이 가장 컸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이 인근의 한 고등학교로 발령이 나셨다는 소문을 들었다. 퇴근 후 선생님을 뵈러 학교에 갔다. 예전 모습 그대로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직도 그대로셨다. 건강하신지 여쭈면 너는 잘 지내냐고 내 걱정만 해주시는 선생님이 좋았다. 언제나 따뜻한 마음 그대로셨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인연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황명주 선생님. 내가 제일 존경하는 선생님의 이름이다. 나의 어른이며 본받고 싶은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고, 힘들 때마다 상담해주시던 선생님이 생각나서 지금은 진로진학상담교사를 하고 있다. 선생님 덕분에 배운 만큼 베풀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절 선생님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나와 인연을 맺은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사랑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때만 되면 찾아오는 아이들도 늘었다. 인연은 하늘이 정해준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선생님께 배운 사랑을 더없이 베풀다 보면 언젠가 선생님을 뵈었을 때 조금은 더 당당해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
 

언젠가 선생님과 함께 교사로서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던 철없는 제자이었기에. 황명주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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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하늘이 정해준 인연

 

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 25년을 지내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던 담임선생님을 생각하며 용기 내어 교단 수기에 참여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고등학교 시절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셨던 선생님이셨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써 내려 갔던 수기였는데 이렇게 수상까지 하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또 한 번 행복을 누리는 것 같습니다. 가슴 벅차게 주셨던 사랑 덕분에 교사가 될 수 있었고, 그 인연으로 저는 제자들에게 사랑을 베풀고자 합니다. 인연은 하늘이 정해준다고 하죠! 선생님께 배운 사랑을 더없이 베풀다 보면 언젠가는 선생님처럼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을까요? 인연이 사랑으로, 그리고 존경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수상 소감을 마칩니다.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모두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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