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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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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 만들기

학교폭력 사건이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3월 개학하자마자 터진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은 대학입시제도까지 흔들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부모가 돈 있고 '빽' 있으면 다 해결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자조적 목소리들이 들끓고 있다. 


즉각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에 학교폭력 근절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실효성있는 보완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나날이 지능화되고 흉포화 해지는 학교폭력 관련 대응체계를 점검·보완하는 것은 정부 당국의 당연한 책무다.

 

현행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 시행된 것은 지난 2004년, 지난 20여 년 교육현장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지만 그만큼 허점과 역기능을 초래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호는 풀리지 않는 영원한 숙제처럼 여겨지는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계의 다양한 시각과 반성, 그리고 대안을 모색하는 특집으로 구성했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태로 촉발된 학교폭력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우리 사회와 교육계에 던져준 시사점은 무엇인지 조명해 본다. 이어 교육현장에서 본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응조치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본다. 학교폭력법을 중심으로 법적 허점은 없었는지, 구조적 한계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또 해외 각국에서는 학교폭력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바람직은 대응 방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아울러 학교폭력을 저지른 학생에 대한 응보적 조치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피해자 구제와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육적 회복을 위해 교육계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고민해 보는 장을 마련했다.  - 편집부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폭력예방법」이 2004년 1월에 제정되었다. 그간 27차례의 관련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학교폭력은 수그러지지 않고 피해학생과 학부모의 고통도 지속되고 있다. 2021년 초에도 ‘학교폭력 미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와 정부와 교육계가 대책 마련에 힘을 모은 적이 있다(박남기, 2021.03). 그러나 학교현장에 따르면 그 이후로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대면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학교폭력은 오히려 급증했고, ‘학폭미투’ 또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학생이 학생을 대상으로 행사하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학생을 선도하며, 적응을 돕기 위해 20년 가까이 노력해왔다.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하여 대책을 마련한다면 학교폭력 문제를 더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폭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금까지의 특징과 원인, 각 대책의 실효성 및 한계를 분석해야 한다. 나아가 과거 데이터를 토대로 미래 추세를 예측하고 그에 부합하는 대응책을 마련하는 선제적인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이미 제시된 학교폭력 개념 정의의 문제, 학교 역할의 한계와 문제, 피해학생 보호조치 및 관련 제도의 문제, 그리고 「학교폭력예방법」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정부와 교육청의 의지와 관련 예산 및 조직과 인력 문제 등에 대한 범사회적 해결 노력도 필요하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을 위한 범사회적 한시 기구 설치 
정순신 아들 사태를 계기로 학교폭력 해결을 위한 정책창이 열렸다. 이 기회를 활용해 교육부(교육청)·전문가·학교·학부모·학생만이 아니라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노하우를 축적해온 시민단체,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 학교폭력 문제를 전담해온 변호사, 치료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서 대책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일회성의 자문위원회가 아니라 2년 기한의 정기적 회의를 개최하는 학교폭력대책위원회였으면 한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 위원회이면 더 좋겠으나 장관 직속 위원회여도 좋다. 아니면 국가교육위원회 소속으로 해도 좋을 듯싶다. 이러한 논의를 진행할 때 과거와 달리 이제는 학생들을 논의의 핵심 주체로 참여시켜야 한다. 당사자인 학생들이 그 누구보다 학교폭력의 원인과 효과적인 대책을 가장 잘 알고 절실하게 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자신들이 분석 및 해결 주체가 되도록 할 때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도 자연스럽게 길러지게 될 것이다. 


학폭 추세를 반영한 대응책 마련
학교폭력 추세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추세 변화에 맞춘 대처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서울의 경우 2012년 대비 폭행·상해피해는 60.9% 감소했지만, 정서·언어적폭력은 2배 이상 늘었다. 성폭력은 2012년 42건에서 2022년 473건으로 급증(11배, 1,026%)했다. 학교폭력 발생 장소는 학교 안에서 밖으로 바뀌어 10년 전에는 교내(57.3%)가 주를 이룬 반면, 2022년엔 교외 폭력(57.6%)이 크게 늘었다(이상명, 2023.03.05.). 박애리와 김유나(2023)의 연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한 대학생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자살을 생각할 가능성이 1.92배,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2.55배 높았다. 

 

통계치를 상세히 소개하는 이유는 학교폭력 관련 연구 결과와 추세 데이터를 바탕으로 AI 예측 시스템을 만들어 5년 뒤의 추세를 예측하면서 한발 앞선 대응책을 마련해야만 예방효과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학교폭력 대책이 예방에 초점을 둔다면서도 늘 발생한 사건 처리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예측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탓도 있다.  

 

학교의 역할 재정립
「학교폭력예방법」은 가해자에 대한 교육적 차원에서 처벌보다는 선도 및 교육을 목적으로 기존의 민·형사상 절차가 아닌 특별한 절차를 마련한 것이다. 따라서 가해자에 대한 처리는 1) 학교가 감당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2) 물리적으로 학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한정시킬 필요가 있다. 나머지는 교육청 혹은 일반 사법기관 차원에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현재도 「학교폭력예방법」 제13조의2(학교의 장의 자체해결)에 의거하여 경미한 사안은 자체 해결하도록 하고 있으나, 아직도 학교현장에서는 학교폭력 사건 처리 관련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의 처리에 대한 피해학생과 학부모의 불만도 늘고 있다. 학교와 교사가 수사 능력이나 권한 등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중에 오히려 문제가 커지기도 한다. 차제에 학교폭력의 개념 범위, 학교(교사)의 역할 범위, 그리고 학교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원인력 및 예산 확보 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피해학생 지원전담기관 제도 운영 내실화
기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이유를 분석하여,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중의 하나가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 제도이다. 교육부(2020: 6-7)의 <학교폭력피해학생 지원 길잡이>에 보면 피해학생 지원이란 ‘피해학생 및 보호자에게 신속한 맞춤형 상담·교육·보호·치료와 유관기관 연계 등 지원을 통해 단순한 사안 해결에서 나아가 심리·정서적·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위기상황을 극복하여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되어 있다.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은 ‘피해 초기부터 학생을 신속하게 보호하고 추수 관리까지 체계적인 맞춤형 보호 및 지원’부터 시작해서 ‘피해학생에게 필요한 개별 맞춤형교육을 통한 학교 및 일상으로의 복귀 준비 및 지원’까지 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모든 지원을 해주는 기관은 실재하지 않는다.

 

경기도 수원교육지원청의 지역교육청 전담기관 지정계획 공고를 보면 피해학생 지원전담기관의 역할은 상담·심리치료, 치유 프로그램 운영, 정기적인 사후 모니터링 등 지원, 일시적인 쉼터 기능 제공, 치유캠프 운영 등이다(경기도교육감, 2023). 피해학생 상담기능을 담당하는 데 그치는 수준이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면 학교에 유선·구두·서면으로 접수하게 되는데, 그 이후부터의 절차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기관은 없다. 피해 접수를 해도 피해자 권리를 위한 안내문(진행 절차,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피해기관 전담기관 목록, 법률지원서비스 가능기관 등)조차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다. 지역교육청의 담당장학사가 있지만, 거기에서도 학부모가 기대하는 지원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도움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과정에서 학부모의 분노와 불신은 증폭된다. 

 

심의위원회에 제출할 피해 증거 수집 책임도 피해자에게 있다. 가령 학원에서 폭력을 당했을 경우 학원 CCTV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데, 피해학생 부모는 학교가 해주기를 바라지만, 학교는 물리적으로 이를 하기에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결국 피해자가 되면 초기단계부터 변호사에게 의뢰하여 필요한 안내를 받고, 증거 조사를 의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형편이 어려운 부모는 포기하게 된다. 

 

이러한 제반 실정을 감안할 때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학교폭력 신고 이후 필요한 제반 절차와 정보를 제공하고, 피해 입증 자료수집 등 피해자가 원하는 행정적 절차를 대행해주는 기관이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피해학생 지원전담기관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교육청은 공모할 때 상담기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결과 전국 303개의 지원전담기관은 대부분이 위(WEE)센터·상담센터·정신과병원 등으로 이뤄져 있다. 학교폭력 피해신고 직후부터 학교장 종결 시, 혹은 심의회 결정 시까지 필요로 하는 제반 역할을 지원 또는 대행해주는 기관(조직)을 별도로 만들거나, 광역교육청 단위에서 최소한 몇 개 이상은 그러한 서비스를 할 수 있는 피해학생 지원전담기관을 지정한다면, 피해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이 줄어들고, 소송으로 직행하는 사례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교육청이 그러한 역할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가 만일 예산 때문이라면 차제에 그 필요성을 부각시켜 필요한 예산과 지원인력 혹은 외부 전담기관을 대폭 확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른 하나는 관련 예산문제이다. 최근 3년간 학교폭력 피해학생 보호 및 회복·치유를 위한 특교 예산을 보면 303개 기관에 2021년 40억 원, 2022년 21.5억 원, 그리고 2023년은 29.4억 원이 책정되었다. 이 예산으로 실효성 있는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필요한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여 집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초·중등교육 예산이 남아돈다는데 왜 학교폭력예방 및 치유에 쓸 예산과 인력은 마련하지 못할까?  

 

피해학생 회복 지원시스템 보완
최근 자료에 따르면 학폭 피해자의 절반 정도(54%)만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박진성, 2023). 제도상으로는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을 경우 심리상담 및 조언, 일시보호, 치료 및 치료를 위한 요양 등을 받을 수 있고, 이러한 도움을 받은 경우에는 본인이 사전에 경비를 지출한 후에 치료비를 청구할 수 있다(「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및 동법 시행규칙).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상담 비율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지원받기 위해 필요한 청구서 및 영수증 등 서류 마련부터 시작해서 신청까지 모두 당사자가 직접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출할 서류는 치료비 청구서와 영수증, 심리상담 조언의 경우 기관장의 의뢰 확인서, 일시보호의 경우 심의의원회 요청서 사본 또는 학교장의 확인서, 치료 및 요양의 경우 의사증명서 등으로 복잡하다. 피해학생 지원단체가 나서서 도와주려고 해도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원제도 오남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살려두되, 부모가 어려워하는 부분은 최대한 돕는 방향으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보완이 필요한 것은 학교장의 피해학생 긴급보호요청권이다. 학교장은 피해학생이 긴급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1)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심리상담 및 조언 2) 일시보호 3) 그 밖에 피해학생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 등을 할 수 있다(「학교폭력예방법」 제16조 제1항). 이 조항에 따르면 ‘피해학생이 긴급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여야 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해야 하는 기속재량이 아니라 학교장의 판단에 따라 조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조항을 피해학생이 요청하는 경우가 아니라 ‘피해학생이 반대하지 않는 경우’ 등으로 적용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

 

미성년자인 학교폭력 피해자에 대해서는 ‘피해학생의 반대 의사가 없으면’ 법이 정한 담당관이 피해학생의 치료를 적극적으로 주선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도 함께 하도록 보완해야 한다. 담당관을 별도로 두기 어렵다면 이를 유관 민관기관에 위탁하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 교육부는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 선정·운영을 권장하고 있다. 이제는 권장이 아니라 각 교육청이 반드시 선정·운영하도록 규정할 때가 되었다. 

 

결론
인간에 내재된 폭력성 때문에 인간사회의 범죄를 모두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을 없애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회복을 지원하는 것 등은 가능하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지금이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줄일 뿐만 아니라,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이 행복한 시민으로 평생을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다. 또다시 들끓다가 기억에서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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