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을 맞이했다. 이제는 이 정부의 교육정책을 한번 짚고 넘어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지난 1월 5일 교육부는 연두 업무보고를 통해 ‘교육개혁, 대한민국 재도약의 시작’이라는 비전 아래, 부처 4대 핵심 추진과제로 학생맞춤(단 한 명도 놓치지 않는 개별 맞춤형 교육), 가정맞춤(출발선부터 공정하게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돌봄), 지역맞춤(규제없는 과감한 지원으로 지역을 살리는 교육), 산업·사회맞춤(사회에 필요한 인재양성에 신속히 대응하는 교육)이라는 4대 개혁분야별 과제를 제시하였다.
10대 핵심정책으로는 ① 디지털기반 교육혁신② 학교교육력 제고 ③ 교사혁신 지원체제 마련 ④ 유보통합 추진 ⑤ 늘봄학교 추진 ⑥ 과감한 규제혁신·권한이양 및 대학 구조개혁 ⑦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구축 ⑧ 학교시설 복합화 지원 ⑨ 핵심 첨단분야 인재 육성 및 인재양성 전략회의 출범 ⑩ 「러닝메이트법」·「교육자유특구법」·「고등교육법」·「사립학교법」 등 4대 교육개혁 입법추진 등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사실 교육부의 교육정책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더 나아가서는 대선공약에 기반한 것이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철이 되면 각 정당과 후보캠프에서는 각종 공약을 만들어낸다. 백년지대계인 교육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교육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교육열이 높기 때문에, 교육관련 공약에 대한 비중은 적지 않다. 때로는 포퓰리즘 교육공약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한다.
대선 공약은 공적 약속
대선 공약은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제시하는 공적 약속이다. 공약은 당선 후 실행하고자 하는 정책을 보여주어 국민들의 판단과 지지를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국민들이 공약만으로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중요 요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후보가 당선된 후, 공약은 인수위원회와 취임 후 행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되어 정책 결정과 집행 방향 및 내용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내용을 공약으로 채택할까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백년지대계인 교육과 관련된 공약은 더욱 그러하다.
사람은 신이 아닌 이상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다수의 집단지성을 능가할 수 없다. 따라서 가장 위험한 것이 후보 혹은 당선자가 신뢰하는 뛰어난 한두 전문가의 지나친 확신이다. 사실 공약을 만드는 작업에는 집단지성이 참여하기보다는 소수의 전문가가 참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념적으로 편향된 그룹이 참여하기도 한다. 간혹 이념적으로 편향된 집단이 만든 공약이 국정과제로 채택될 경우 공공성을 지녀야 하는 교육에는 커다란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꽤 오래전부터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여야 모두 ‘공약’을 만들지 말고, 국민을 위한 집단지성에 의한 교육정책을 펼치겠다는 공약 정도만 제시하자는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교육에 관심을 갖지 않는 국민은 거의 없기 때문에, 후보들은 좋은 ‘교육공약’을 제시하고자 하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대선과 총선에서 포퓰리즘 교육공약을 가려내고, 제대로 된 교육공약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선거철만의 단골 공약, 실현 불가능한 공약,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포퓰리즘 공약을 걸러내고, 학교현장을 중심으로 삼고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공약을 내세운 후보와 정당을 선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문제는 단기간에 개선하거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교육공약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교육정책을
그런데 이 정부에서 이미 공약은 제시되었고, 이제는 공약에 따라 제시된 국정과제에 기반하여 제시되는 각종 교육정책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추진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교육부가 연두 업무보고를 통해 제시한 10대 핵심정책 중 쟁점이 되거나 중요한 정책을 몇 가지 꼽는다면, 2번 정책과 연계된 고교학점제, 3번 정책과 연계된 교육전문대학원 도입, 4번 유보통합 추진, 7번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와 글로컬대학, 10번 교육감 러닝메이트제, 교육자유특구 도입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정책이 바람직한 것인지, 잘 추진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관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을 보기 위한 관점을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는 있다.
첫째는 정책의 가치성 또는 개혁성이다. 해당 정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가,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 국민의 참여와 권익을 강화하는 정책인가, 정책이 국가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담고 있는가 등이다.
둘째는 정책의 구체성이다. 이는 정책이 구체적이고 적절하고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는가, 연도별 추진계획이 적절한가, 정책의 실행에 따른 재정계획 및 재원 확보방법이 적절한가, 국민들이 동의하고 이해하며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정책인가 등이다.
셋째는, 정책의 적실성 또는 실현가능성이다. 이는 국민들의 욕구와 열망을 잘 담아내고 있는가, 국가현황 및 정책환경과 잘 부합하는가, 국민들의 관심이 많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과제인가 등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 1년간 윤석열 정부 교육정책의 성과, 나아가 앞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교육개혁을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먼저 고교학점제는 이미 지난 정부부터 추진이 예고된 것이다. 정책의 가치성과 적실성 측면에서 계속 전면실시를 미루다가 이제는 정말로 추진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교육정책의 적실성과 준비도의 측면에서 정말로 적절한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3번 정책과 연계된 교육전문대학원의 도입은 이미 1990년대 말 다양한 논의를 거쳐 잠시 유보된 정책으로서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 역시 정책의 가치성·구체성·적실성의 측면에서 근본적인 검토 후 추진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4번 유보통합 추진과제의 경우 원칙론에 있어 이해당사자들은 대부분 동의한다. 과거 20년 동안 논의 및 추진해온 유보통합 방식은 관련된 환경 정비를 우선하고, 관리부처 일원화를 마지막 단계로 미룸으로써 결국 추진되지 못하였다. 올 1월 30일 사회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유보통합추진위원회가 발표한 ‘출생부터 국민안심 책임교육과 돌봄: 유보통합 추진방안’에 따르면 관리체계 일원화를 1차적 과제로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책의 가치성 측면에서도 타당하며, 관리체계의 일원화부터 추진한다는 점에서 지난 20년 동안의 노력과는 달리 실현가능성 역시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7번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와 글로컬대학 추진의 경우 현 정부 국정과제의 하나인 ‘이제는 지방대학시대’에 따른 것이다. 상대적인 소외감을 느끼는 수도권대학의 문제와 함께 지방자치단체가 대학을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대책이 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10번 교육감 러닝메이트제는 교육자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으므로 역시 그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지면 관계상 상세한 언급을 하지 못하지만, 중·장기 교원수급·늘봄학교·디지털교과서 등 에듀테크 교육활성화, 교육자유특구, 학교시설복합화, 교원인사제도 개편, 대입개편과 같은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할 때 위에서와 같은 세 가지 관점에서 신중한 검토와 논의 후 추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약과 국정과제에 따른 정책이라 하더라도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한 단계를 더 거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쟁점이 될 만한 중요한 정책의 경우 이제 전문위원 체제를 통하여 어느 정도 틀을 갖추고 있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는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합의를 도출할 수 없는 정책이나 제도라면 교육부가 해당 정책을 채택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결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교육위원회의 심의과정을 거친다면 교육정책 집행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갈등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3조(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조정 등)에서도 다양한 사유에 따라 ‘교육정책에 대하여 국민의견을 수렴·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법적근거도 충분하다.
정부 출범 1주년을 맞는 올해는 교육부가 올 초 업무보고에서 밝힌 업무추진 방향으로서 ‘국민 눈높이에 맞춘 교육개혁의 원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