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고향 고모네 집 뒤뜰에는 제법 큰 석류나무가 있었다. 여름에 붉은색과 노란색이 묘하게 섞인 석류꽃이 피고, 석류꽃이 진 다음에는 석류 열매가 커지기 시작했다. 주먹만 해져서 붉은색을 띠기 시작하면 신 석류 맛이 생각나 따고 싶은 마음도 덩달아 커졌다. 하지만 꾹 참았다. 추석 즈음 석류가 다 익어 벌이지면 고모가 한 개씩은 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소설 <토지>에서 봉순네가 김 서방댁과 나누는 대화에 석류꽃이 나와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런데 니 석류꽃은 머할라꼬 줏노?”
“아까바서 줏소.”
“아깝다니 그기이 어디 쓰이나?”
“멍도 안 들고, 시들지도 않고 우찌나 이쁜지.”
“미쳤다. 할 일도 없는갑다.”
“해가 들믄 시들 것 아니요.”
“사십이 넘은 제집이 그래 그 꽃 가지고 사깜(소꿉장난의 방언) 살 것까?”
“애기씨 줄라꼬요. 바구니에 수북이 담아놓으니께 볼만 안 하요? 이런 빛깔 다홍치마가 있다믄 한 분 입어보고 싶소.”
<토지> 3권
석류꽃이 떨어졌으니 6월쯤일 것 같다. 봉순네는 시들지도 않고 떨어진 석류꽃을 줍고 있다. 벌써 바구니에 수북한 모양이다. 그걸 보고 김 서방댁은 나이 들어 소꿉놀이하려고 그러느냐고 놀리고, 봉순네는 애기씨(서희) 주려고 한다고 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석류빛 다홍치마가 있다면 입어보고 싶다는 봉순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할 때 그 다홍치마다.
봉순네는 봉순이의 어머니로,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최참판댁 침모로 살고 있다. 서희에게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별당아씨 대신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다. 하녀 귀녀가 최참판댁 당주 최치수 살인에 관여했음을 가장 먼저 눈치챌 정도로 사려 깊은 여성이기도 하다.
악인 조준구가 말년에 재산을 다 털어먹고 통영 서문고개 너머에 사는 아들 조병수를 찾아갈 때에도 석류꽃이 나오고 있다. ‘돌다리를 지나고 석류꽃이 핀 울타리를 따라 꽤 넓었던 골목길’을 지나 병수 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처럼 석류나무는 하동이나 통영 등 남부지방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나무다. 하지만 추위에 약해서 서울 등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어렵다.
석류나무는 이란·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과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도입 식물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초기에 중국을 통해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5~7월 꽃이 피는데 꽃받침이 통 모양이고 육질이며 꽃잎은 6장이다. 9~10월이면 붉은 과육이 터지면서 투명 구슬 같은 씨를 드러낸다. 홍보석 같기도 한 열매는 신맛이 강하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 여성과 관련 깊은 석류
석류는 여러모로 여성과 관련이 깊다. 우선 석류꽃은 6장의 꽃잎이 진한 붉은색이다.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은 이런 꽃 모양을 보고 ‘짙푸른 잎사귀 사이에 피어난 한 송이 붉은 꽃(萬綠叢中紅一點)’이라고 노래했다. 오늘날 흔히 뭇 남성 속의 한 여인을 가리키는 ‘홍일점’의 어원이다. 또 석류 열매에는 갱년기 장애에 좋은 천연식물성 에스트로겐이 들어 있다. 그래서 석류로 만든 여성음료가 많고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같은 마케팅 문구가 있는 것이다.
석류를 소개하면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도시 그라나다(Granada)를 빠뜨릴 수 없겠다. 스페인 여행을 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곳이다. 그라나다라는 지명 자체가 석류에서 유래한 것이다. 올해 초 그라나다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도시 곳곳에서 석류모양 장식물과 무늬를 볼 수 있었다. 석류를 의미하는 영어 ‘파머그레니트(Pomegranate)’는 그라나다 앞에 사과를 의미하는 ‘파머(Pome)’를 붙인 것이다.
봉순네는 서희가 열 살, 봉순이가 열두 살 때 평사리를 휩쓴 호열자(콜레라)로 윤 씨 부인과 김 서방, 강청댁 등과 함께 허망하게 죽는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조준구 일가는 최참판댁을 차지하고 마음껏 전횡을 일삼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봉순네라도 살아남았으면 조준구 일가의 전횡을 어느 정도는 막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또 유일한 혈육인 봉순이가 기생 길로 가는 것도 분명히 막았을 것이다.
<연을 쫓는 아이>(할레드 호세이니 작)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 근대사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석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카불의 부잣집 소년 아미르와 그의 하인 하산은 어릴 적부터 친구처럼 지내며 컸다. 그러나 하산은 목숨을 걸고 아미르를 지켜준 반면 아미르는 하산이 위기에 처했을 때 외면했다.
아미르는 1980년 아프간 공산화를 계기로 카불을 탈출해 미국에 정착했다. 20년 후인 2001년 어느 날 아미르는 하산이 죽고 그 아들이 고아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번에는 아미르가 용기를 내 하산의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탈레반 치하의 카불에 들어가는 내용이다.
아미르와 하산이 좋은 관계를 유지한 시절, 석류나무가 있는 언덕에 올라가곤 했다. 어느 날 아미르는 부엌칼로 나무에 ‘카불의 술탄인 아미르와 하산’이라고 새긴다. 두 아이는 피처럼 붉은 석류를 따 먹곤 했다. 아미르가 하산을 배신한 다음 죄책감에 시달리며 하산과 갈등을 겪는 대목에도 석류가 나오고 있다.
하산을 향해 석류 한 개를 휙 던졌다. 석류가 하산의 가슴에 맞고 터지자 빨간 과육이 튀었다. 하산이 놀라서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너도 던져봐!”
내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중략)… 몇 번이나 그에게 석류를 던졌는지 모른다. 지쳐서 숨을 헐떡이며 멈추자 하산이 총살 집행 군인들에게 총을 맞은 것처럼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치고 절망해서 털썩 주저앉았다.
아미르가 하산의 아들을 구하러 카불을 방문했을 때 늙은 석류나무도 찾아보았다. 희미해졌지만 여전히 ‘카불의 술탄인 아미르와 하산’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잎이 다 떨어진 시든 나무는 과연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아프가니스탄은 인접한 이란·파키스탄과 함께 석류나무가 많은 곳이다. 시든 석류나무는 탈레반에 신음하는 아프가니스탄 현실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석류나무는 아미르와 하산의 우정과 함께 카불에서 벌어진 탈레반의 만행도 지켜보았을 것이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생전 생명운동을 얘기하면서 “인류적 차원에 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작가가 살아 있었으면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탈레반의 만행에 대해 분명히 따끔한 말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