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당선소감> 마지막 한 때를 위해 추억을 아낍니다
비가 그쳤습니다. 몇 그루의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한결 정갈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약간의 햇살만으로도 겨울을 밀고나가는 저 나무들이 성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에 백열전등이 밝혀집니다. 노랗고 붉은 낙엽을 떨구고 환한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들처럼. 나무와 나무들 사이에 서있으면 나무들의 혼잣말이 들립니다. 나무들은 독백을 좋아합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수다 떠는 인간의 풍속과는 사뭇 다릅니다. 나무는 그저 살아있음을 충만하게 느낄 뿐입니다. 나무들 곁에 서 있노라면 내 살갗에도 파란 움이 돋습니다. 한 때 나무들도 소리 내는 발성기관이 있었을 것입니다. 주절주절 무성한 이야기로 골짜기를 메웠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신들의 깨어진 말과 언어에 상처를 입고, 결국 하나 둘 침묵으로 돌아섰을 것입니다. 나뭇잎을 가만히 보면 입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게 그 증거라 믿습니다. 말을 버리면서 나무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온 몸이 입술이고 귀이고 눈입니다. 욕심을 버린 나무가 마지막 진화한 모습, 나무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에 이른 셈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버리고 철저히 사물 속으로 들어가는 행
- 김평엽 경기 효명중 교사
- 2008-12-09 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