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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시 당선소감> 마지막 한 때를 위해 추억을 아낍니다


비가 그쳤습니다. 몇 그루의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한결 정갈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약간의 햇살만으로도 겨울을 밀고나가는 저 나무들이 성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에 백열전등이 밝혀집니다. 노랗고 붉은 낙엽을 떨구고 환한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들처럼.

나무와 나무들 사이에 서있으면 나무들의 혼잣말이 들립니다. 나무들은 독백을 좋아합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수다 떠는 인간의 풍속과는 사뭇 다릅니다. 나무는 그저 살아있음을 충만하게 느낄 뿐입니다. 나무들 곁에 서 있노라면 내 살갗에도 파란 움이 돋습니다.

한 때 나무들도 소리 내는 발성기관이 있었을 것입니다. 주절주절 무성한 이야기로 골짜기를 메웠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신들의 깨어진 말과 언어에 상처를 입고, 결국 하나 둘 침묵으로 돌아섰을 것입니다. 나뭇잎을 가만히 보면 입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게 그 증거라 믿습니다. 말을 버리면서 나무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온 몸이 입술이고 귀이고 눈입니다. 욕심을 버린 나무가 마지막 진화한 모습, 나무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에 이른 셈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버리고 철저히 사물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입니다. 나는 들길에서 참새 떼를 만나면 참새가 됩니다. 강을 만나면 강물이 되어 노을을 기다립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연의 사물 속으로 들어가 오롯이 사물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합니다. 천이백도의 열기를 추억하는 도자기가 예리한 날을 세우고 가장 찬란한 소리로 깨지는 법입니다. 아름다운 색깔을 간직한 꽃들도 마지막 한 때를 위해 추억을 아낍니다. 상처가 깊을수록 그들도 찬연한 불꽃이 됩니다.

사람의 가슴엔 저마다 작은 금합이 있습니다. 정밀한 향기와 색소로 이루어진 금합, 외로움과 그리움을 너끈히 밀고 나갈 그 뜨거운 향로. 아름답고 순결한 그 밀실이 열려 이 한 겨울 열락으로 지내길 바랍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더욱 정진하여 깊고 향긋한 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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