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에 교육청에 근무하였는데 아들 덕택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일찍 도착하였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많이 있는데도 안정이 되지 않아 책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하루는 마음을 고쳐먹고 책상머리에 있는 단편소설집을 꺼내들고 정비석의 '성황당'을 읽었다. 단편치고는 28페이지나 되는 꽤 긴 소설이었다. 전에도 읽어본 적이 있지만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순이’의 남편 ‘현보’에 초점을 맞춰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현보는 숯장수였다. 현보는 숯을 구워 파는 일을 업(業)으로 하면서 자기의 일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이 없었고, 아무 걱정도 없었으며 항상 행복했다. 그에게는 ‘웃음’과 ‘사랑’이 가득했다. 일터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고, 아내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현보는 그저 행복스러웠다. 전나무․잣나무․박달나무․물푸레나무․떡갈나무․소용나무… 아름드리 나무, 나무들이 기운차게 활기를 쭉쭉 뻗고 별 곁듯 서 있는 숲 속을 거닐면서 현보는 다시 빙그레 웃었다. 무성한 나무 나무 ! 그것은 얼마나 친근한 현보의 벗이었으리요 ! 순이도 떼어버리고는 살 수 없을 만큼
여러 선생님, 지난밤에 편히 주무셨습니까? 저는 어제 잠을 잘 못 잤습니다. 새벽 2시 반에 잠이 깨었는데 그 때부터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이것 저것 생각만 했습니다. 물론 학교 생각이죠. 잠 잘 자는 것도 큰 복 중에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아침입니다. 지금은 무척 피곤합니다. 잘 적에는 아침 6시까지 푹 자려고 생각하고 누웠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 한 선생님께서 병가를 내셨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그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으시고는 지금까지 이렇게 예의바른 선생님을 처음 봤다고 하시면서 매우 기뻐하시는 걸 보았습니다. 저도 같은 전화를 받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매우 미안해하시는 음성으로 ‘죄송합니다. 오늘 몸이 불편해 하루 쉬어도 되겠습니까?’ 였습니다. ‘당연히 쉬어야지요. 하루 편히 쉬세요.’라고 말했지요. 전에는 선생님께서 병가를 내실 때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장 선생님이나 동료 선생님께 말씀드리는 것으로 끝내는가 하면, 전화를 하더라도 ‘오늘 몸이 불편해서 쉬어야 되겠습니다.’ ‘오늘 몸이 불편해서 쉬겠습니다.’였는데 이런 전화를 받았으니까 당연히 기뻐하셨겠죠. 선생님
지난 2월 명예퇴직하신 강명자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이 퇴직 후에도 저에게 계속 미치며 어려울 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선생님이 계시기에 소개하며 그분의 따뜻한 손길을 더듬어보고자 합니다. ‘여자수자(與者受者)’란 주는 사람(與者)과 받는 사람(受者)을 말하는데 나는 늘 수자(受者)이고, 그분은 언제나 여자(與者)인 평생 잊지 못할 분이 한 분 계신다. 그분을 처음 만난 건 97년 3월이었다. 언양여상에 같은 날 발령 받아 함께 연구부에서 마주 보고 생활하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분은 사실은 여자(女子)이면서도 여자(女子)가 아닌 여자(與者)다. 1년 동안 함께 근무하면서 무엇이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베풀기만 한다. 내가 잘 생긴 남자도 아니고 매력을 줄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나뿐만 아니다. 8시가 되어 출근하고 있노라면 사흘이 멀다하고 빵이며, 우우며, 과일이며, 정성이 담긴 떡이며, 각종 차며.... 너무 많아 헤아릴 수조차 없다. 특히 기억나는 건 학교 사택에서 자취하며 고생한다고 김치를 손수 정성껏 담궈 온 것과 97년 11월 울산여고에 수능시험 감독으로 갔을 때 식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김밥
신학기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월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세월의 빠름을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세월을 저축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까먹고 살고 있다 싶어 아쉽기만 합니다. 그러나 경륜을 쌓고, 보람을 쌓고, 희망을 쌓으면서 살아간다 싶으니 조금은 다행스럽고 안도가 됩니다. 새로 오신 선생님을 환영하고 신입생을 맞아들여 새로운 모습으로 새 출발을 시작했는데, 시작이 너무 좋은 것 같아 기쁨을 감출 수 없어 속내를 드러냅니다. 순진한 어린애 모양. 무게도 없이. 체면도 없이. 출발부터 잔잔한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쉽게 일어나지도 않는 감동이 서서히 일기 시작하더니 그칠 줄 모릅니다. 오전 8시부터 아침자습시간에 교실을 둘러볼 때마다 전 담임 선생님들이 입실하여 조용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지도하며 학생들이 골마루, 계단을 청소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볼 수 없던 일이니까요. 그리고 이제 제대로 돌아가나 싶었어요. 연세 많으신 선생님으로부터 젊은 선생님 할 것 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 학부모는 물론 울산시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입니다. 교육이 한두 사람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 아
오늘 아침은 잡다한 생각이 많아집니다. 다병(多病)인데다 몸도 마음도 차갑기 때문일까요? 저는 지금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행복이란 환경여건이 좋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환경을 잘 극복하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을 되돌아 볼 때 개인적으로는 건강이 더 나빠졌을 뿐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면에서도 환경이나 여건이 더 나아진 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에 편안함과 기쁨이 있고 행복을 느끼게 되는 건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인정하고 잘 극복하고 적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 어느 누구보다 저 자신은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휴대폰만 해도 그렇습니다. 2년 전에는 휴대폰을 사용하였지만 어떤 계기로 사용을 하지 않았더니 훨씬 편하고 좋았습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득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볼 때 많은 선생님들께 불편을 끼쳐드렸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교감 4년 차로 나름대로 요령도 생겨 얼마든지 편하게 지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볼 때 이건 공직자로서 최선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자
오늘 아침 겨울 같은 느낌을 받지는 않으셨는지요? 올 4월은 유달리 날씨가 변덕이 심한 것 같습니다. 어제는 흙비가 내리고 때 아닌 천둥이 치며 강풍이 불더니 지금까지 쌀쌀한 바람이 그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학교의 등나무꽃을 비롯한 많은 꽃들이 개의치 않고 바람 가는 대로 춤을 추며 웃고 있는 모습이 환하게 다가옵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는 가운데 교육에 관한 글이 있어 꼼꼼히 읽어 보았는데 너무 교육현실을 모르고 편향적인 시각으로 냉소적 비판을 가한 것을 보고 마음이 엄청 무거웠습니다. 글쓴이의 이름을 보니 외국사람 같고 글 내용을 보니 한국사람과 같았습니다. 소설가요 영화평론가로 종사하는 분이라 영향력이 대단한데 아직도 이와 같은 글을 올리다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내용을 보니 스승의 날을 없애야 한다느니, 스승의 노래를 없애야 한다느니, 교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느니, 아직도 솎아내야 할 교사가 많다느니... 교사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이 애들을 가르칠 기초적인 지식과 실력을 갖추고 있고 성추행하거나 자기 성질에 못 이겨 멋대로 구타하거나 뇌물을 뜯어먹지만 안아도 애들이 고마워한다면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교사가 넘쳐난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