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갑자기 채널이 바뀐다. 옆에 있던 아내가 리모컨으로 다른 방송을 택한 것이다. 이러 저리 돌리다가 재미가 없으면 결국은 내게 리모컨을 주고 간다. 그렇지만 나도 막상 특별한 방송이 없으면 같은 행동을 한다. 그러다가 다른 소일거리를 찾는다. 평면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교실 상황을 상상해 봤다. 나는 열심히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저마다 리모컨을 들고 있다. 내 수업을 시청하는 아이들은 몇 이나 될까. 끔찍한 상상이다. 이런 생각 끝에 내 수업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을까. 재미가 있을까. 생활에 도움이 될까. 앞으로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텔레비전을 즐겨보지 않지만, 몇 개 프로그램은 챙겨본다. 내 수업도 그런 것이 될 수 있을까.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을 때, 재미있는 드라마가 있을 때 서둘러 퇴근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데, 내 수업은 그럴게 할 수 없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하면서 내 교직 생활을 성찰해 본다. 25년이 넘게 교실에서 가르쳤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교과서 하나 달랑 들고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나. 아이들에게 무슨 감동을 주었을까. 절망적인 면이 많다. 방송 프로그램은 우선
젊은 선생님들은 수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컨설팅을 의뢰한다. 그리고 새로운 수업 기술을 배우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선생님 수업 기술에 이러이러한 것이 좋다고 일러준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감을 갖는다. 어떤 선생님들은 마음속에 담고 있는 어려움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때도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그냥 한참 들어준다. 그 선생님은 미안해하다가도 응어리가 풀렸다고 고마워한다. 그런데 며칠 전에 나이 지긋한 선생님을 만났다. 경력도 제법 많은 선생님이 컨설팅을 의뢰해서 놀랐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조심스럽게 정보를 나누었다. 그러더니 컨설팅 끝물에 내 손을 붙잡고 애원하듯 질문한다. 수석교사 생활이 궁금하다고 한다. ‘어떻게 힘든 것은 없나요. 저도 수석교사를 하고 싶어서요’ 하면서 속내를 털어놓는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이런 질문을 하는 선생님들을 몇 번 만났다. 대개 이런 선생님들은 본인 신상과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명확한 답을 원한다. ‘편하다, 힘들다’ 둘 중에 하나를 요구한다. 아니 은근히 편한 길이니 들어오라고 권유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나는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답을 알 수도 없어 그렇겠지만, 세상일이 두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가 2천만대를 넘을 것이라는 보도다. 인구 5천만의 국가에서 2천만대면 꽤 많다는 의미다. 안전행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 차량 당 인구수는 2.59 명이라고 한다. 바꿔서 말하면 2.59명당 차가 1대씩 있다는 것이다. 2014년도 상반기에만도 84만대정도가 등록을 했다. 그러니까 한해에 150만대정도 팔린다는 얘기다. 이 통계도 결국은 인구 비례해 꽤 많이 팔리는 의미다. 이렇게 자동차가 많다보니 차량 관련 문화도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초보운전 스티커가 그렇다. 과거에는 이 문구가 얌전했다. 간단하게 초보운전이라고 붙이고 다녔다. 그런데 요즘 여러 유형이 보인다. 이 중에 ‘저도 제가 무서워요’라고 애원하는 어투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무섭다’는 표현은 운전이 서툴다는 뜻이다. 이러한 고백은 차량이 홍수를 이루는 길 위에서 자신이 보호받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즉 자신이 운전이 서투니 조심해서 가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얌전하게 보호하지 못한다. 일부 사람들은 초보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힘들어 할 때 욕설을 섞어가며 멸시한다. 일부 차는 가까이 가서 안전을 위협을 하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갔다. 이곳은 새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볼만하다. 여성 건축가가 만든 곳이라 여성적인 느낌이 있다. 건축물에 직선이 없고, 물이 흐르듯 곡선으로 이루어져있다. 내부에도 막힘이 없다. 이리저리 자유롭게 연결돼 있다.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면서도 역사가 함께 있다. 가운데 한양 도성 성곽 터를 품고 있는 모습이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이곳에서 간송문화전이 열리고 있다. 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다. 국보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 중 하나다. 간송미술관은 1938년 일제강점기에 간송 전형필(1906~1962)에 의해서다. 그는 문화유산을 수집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1936년에는 영국인 국제 변호사 존 개스비를 찾아가 ‘청자기린유개향로’(국호 제65호)와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국보 제270호)등을 거액을 들고 가 찾아왔다.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장에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을 비롯해 고려청자, 조선 백자 등을 구입하며 우리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막았다. 6.25전쟁 때는 훈민정음을 베개 속에 넣고 지켰다는 일화도 있다. 평생 국어 선생으로 살면서 학생들에게 ‘훈민정음’ 원본에 대해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은 교육과정과 교육평가의 연계 및 전문화를 통하여 학교 교육의 질 향상을 도모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8년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서 정식 발족되었다. 고등학교 이하 각 급 학교 교육과정의 연구·개발과 교과서를 비롯한 각종 교수·학습 자료를 체계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과 교육평가의 효율화를 도모해, 학교 교육의 내실화와 질적 향상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평가와 관련하여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시험) 출제·관리를 하고 있다. 올해도 평가원은 수능 시험 시행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시험은 국어․수학 영역에서만 A형 또는 B형을 선택하는 수준별 시험을 실시하고, 영어 영역의 수준별 시험은 폐지한다. 통합형 시험으로 전환된 영어는 ‘대입에서 쉬운 수능 영어 출제(교육부 업무보고, 2014.2.)’ 방침에 맞춰 출제할 계획이다. 이번 수능 시험 응시 원서 접수기간은 8월 25일(월) 부터 9월 12일(금)까지 12일간이다. 평가원은 올해도 EBS 연계 교재와 강의로 보완하면 수능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출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EBS 수능 교재 및 강의와 수능 출제의 연계
학교 교육활동에서 비중이 큰 것은 무엇일까. 시험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시험하면 성적이 바로 생각난다. 시험은 반드시 성적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는 점수와 석차로 나타나면서 누군가에게는 매력 있게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시험에 의해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한 순간에 구분된다. 가정에서도 점수 때문에 혹은 등수 때문에 부모님께 혼이 난다. 그래서 아이들은 시험이 부담스럽다. 시험 결과로 표시되는 숫자는 허구적 믿음을 준다. 숫자에 의해 잘하고 못하는 인식을 갖는다. 숫자에 의해 이기고 졌다는 판단을 한다. 수량화에만 치중하면서 교육이 본래 추구하고자 했던 목표는 숨어버린다. 개별 현상이 갖는 특수성은 무시되고, 이제 숫자에 의해 타인 지향적인 경쟁 심리만 만들어진다. 90점이라는 높은 점수도 상황에 따라서는 만족하지 못한 것이 된다. 점수가 낮아도 석차가 올라가면 잘한 것이 되기도 한다. 이런 관점은 시험에 대한 오해에서 만들어진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시험은 교육평가 영역이다. 교육평가는 교육을 평가하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말에는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이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평가에는 가르치는 것도 포함돼야 한다
이웃 학교 강 선생님이 수업에 어려움이 있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강 선생님과 인연은 신규 강의 때부터 시작했다. 이듬해 학교에 평가 강의를 갔는데 반갑게 인사를 했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수업과 관련하여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세 번째 만날 때는 나를 오랫동안 알고 있는 선배 선생님처럼 대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수업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 도움을 요청해도 되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짐을 챙기면서 얼떨결에 허락했다. 그랬더니 진짜 메일을 보내왔다. 어려워하는 점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장악하고 싶어 했다. 장악은 아니더라도 수업에 방해가 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수업 동영상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수업컨설팅은 의뢰인이 수업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컨설턴트에게 의뢰한다. 이렇게 하면 컨설턴트가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한 후, 이를 토대로 해결책을 제안하거나 함께 모색 ・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특히 수업을 직접 관찰하지 못할 때는 동영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뢰인의 수업에 대한 어려움을 자세히 언급해야 한다. 즉 개선하고자 하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후배 선생님과 자동차 이야기를 했다. 손윗동서가 고급 차를 샀는데 부럽다고 한다. 조수석에 탔는데, 부잣집 응접실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자신도 언젠가는 그 차를 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다음에는 꼭 그 차로 사라고 권한다. 이제 나이에 맞게 그 정도는 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어디 가서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대접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만 나도 이미 그 차에 눈과 마음을 빼앗긴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친구가 이 차를 타고 있어, 마음에 두고 있었다. 나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 타고 있는 차보다 더 좋은 것에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사실 차에 대해 욕심을 보이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니다. 마음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혼자만의 생각이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도 없고, 나쁠 것도 하나도 없다. 욕심이란 단어 그 차제도 순하다. 한자로 봐도 ‘욕(慾)’자는 바랄 욕 자(欲) 아래에 마음 심 자(心)가 있는 형태이다. 말 그대로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얻고자 하는 마음이다. 실제로 욕심은 발전의 동력이다. 욕심이 있기 때문에 더 노력하고 성과를 만들어낸다. 오늘과 같이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편하게 살 수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의 우승컵은 독일이 들어 올렸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우승의 비결은 막강한 조직력과 탄탄한 전술, 현란한 공격이었다. 독일의 우승에서 보아야 할 것은 독보적인 스타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아르헨티나의 메시, 브라질의 네이마르, 포르투갈 호날두가 주목받았고, 자연스럽게 이들이 속한 나라가 우승팀으로 언급되었다. 하지만 독일은 세계적인 스타가 없었다. 축구는 역시 팀 경기였다. 한 사람의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팀의 성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호날두는 분전했지만, 결과는 만족하지 못했다. 동료들이 도와주지 않은 탓도 있지만, 혼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메시도 마찬가지다. 종횡무진 활약해 최우수 선수에게 주는 골든볼을 받았지만, 팀은 패배했다. 네이마르는 부상이라는 악재 때문에 경기장에서 뛰지 못했지만, 막상 뛰었다고 해도 독일의 조직력을 뛰어넘기는 어려웠을지 모른다. 축구가 일부 스타 중심의 경기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 대표팀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 예가 박주영이다. 홍명보 감독은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만 선발한다는 원칙을 주장하다가 느닷없이 박주
현 정부는 교육 정책의 핵심 과제로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과도한 성적위주의 학교 풍토를 개선하겠다는 의지이다. 그리고 학업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는 등 수업개선으로 학생들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이다. 진로교육도 강화해 각자의 소질과 적성을 찾아 게발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교육에서 아이들이 꿈과 끼를 키우고, 마침내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제이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그렇지 못했다. 꿈과 끼를 키우기 전에 당장 입시라는 현실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그러다보니 행복도 누릴 수가 없었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교사와 학부모까지 행복하지 못했다. 정부의 교육 정책 과제에 대한 실천은 비교적 적극적이다. 그리고 의지도 강하다. 정책이 학급 당 학생 수 감축 등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단위 학교도 국가 교육과정을 근간으로 저마다의 여건을 반영한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을 바르게 하고 있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진로교육은 문제가 있다. 진로
2차 지필평가가 끝나면 곧 방학이다. 이때는 아이들이 수업 집중도가 떨어진다. 집중력이 낮아진 학생들에게 수업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만을 재차 강조하면서 수업을 하는 것도 힘들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바라는 대로 놀 수도 없다.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으니 이때는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떨까. 독서신문 만들기가 좋은 학습 활동이다. 그동안 문학 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할 수도 있어서 이미 준비는 충분히 했다. 신문을 만들면 배운 내용을 직접 써보고 정리하는 학습 효과가 있다. 그리고 신문 만들기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둠 활동을 통해서 할 수 있기 때문에 협력 관계도 형성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감도 배울 수 있다. 최근 배움의 형태는 협력적인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더불어 사는 공존의 원리 속에서 교육이 가야한다. 그런 점에서 신문 만들기는 실천의 과정이다. 이러한 수업은 능동적인 학생을 키울 수 있고, 그룹 간의 주의집중을 증가시킨다. 또 협동과 독립성을 증진시키고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교실이 시끄러워질 우려가 있고, 아이들이 우왕좌왕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
강의를 하러 가면 강사 소개를 한다. 그러면서 업무 담당자가 나의 이력을 읽는다. 출신 대학부터 근무하는 학교, 직책, 그리고 출간한 저서를 열거한다. 사적으로 앞면이 있는 경우는 강의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인연까지 들추며 연수생들에게 박수를 유도한다. 그리고 꼭 붙이는 말이 훌륭한 강사라고 칭송한다. 이때 일부 청중은 소개하는 사람의 의도를 알고 환호의 박수를 보내준다. 그런데 그 순간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훌륭하다’라는 형용사를 내가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학력과 프로필은 부끄럽다. 남과 비교하면 더 보잘 것이 없다. 더욱 내가 가진 경력이라는 것이 온전히 나의 노력으로 이룬 것도 아니다. 교직이라는 조직 사회에서 관계하면서 얻은 것이다. 강의 내용도 내 것이 아니다. 그저 학교에서 아이들과 수업을 한 사례를 안내할 뿐이다. 수업하면서 어려웠던 점, 반성해야 할 점을 이야기한다. 수업에 대해 학문적으로 연구한 것도 아니고, 나만의 수업 기술도 알려주지 못한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경력을 밝히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남과 만날 때는 이름을 알려주워야 한다. 나는 싫지만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다. 문제는 그것이 이해의 수단이
제주 여행 중에 이중섭 거리에 갔다. 화가 이중섭은 한국전쟁 중에 서귀포에 머물렀다. 머문 것이 아니라 피란 생활이었다. 제주 사람의 도움으로 방을 하나 얻어 살았다. 그때의 인연으로 이 거리가 조성된 것이다. 사실 이중섭이 이곳에 살았던 시간은 1년도 안 된다. 그럼에도 그는 여기서 여러 개의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피란민 배급품과 고구마로 연명했지만, 가족과 함께 했기 때문에 가행복한 여생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 천재 화가의 추억이 있는 곳이지만, 모두가 소박하다. 당시 머물렀다는 초가집은 그때의 어려움을 그대로 이고 있는 듯 지붕이 낮다. 거리에 이중섭을 따르는 화가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가난한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창작의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속된 눈으로 보면 밥벌이도 못하는 듯하다. 화려한 도시 생활에서 떠나온 여행객들은 오히려 이런 모습에 흥이 났다. 저마다 작은 가게를 드나들며 장식품을 사느냐 정신이 없다. 나도 휩쓸려 다녔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모두 몸에 치장하는 장신구라 만지작거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가게에서 풍경을 봤다.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풍경이지만, 재질이며 색깔은 제법 멋스럽다. 쇳조각이 고급 청동처럼
인간은 누구나 집단생활을 한다. 그리고 그 집단 내에서 일종에 사회적 서열을 갖는다. 그것은 단순한 위치 배열에 그치지 않고, 지위와 역할 등을 부여받는다. 특히 이런 지위는 개인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교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사회적 서열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생 교단에 서 있는 것을 행복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러나 교사도 현실적인 직장인이다. 생활하다보면 조직의 생리적 구조에 눈을 뜬다. 승진 자체를 목표로 두지는 않지만, 사회적 생리이기 때문에 따라가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조직 내에서 주어지는 성취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었다. 나는 교직에 처음 들어오면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기도 전에 입시 준비를 했다. 그것은 내가 서툰 탓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원했던 방식이었다. 열심히 한 탓에 몇 년 만에 노하우가 생기고, 이내 젊은 시절부터 입시 전문가가 됐다. 일찌감치 부장 직책도 맡으면서 아이들을 지도했다. 당시는 선지원 후시험 제도였다. 그때 나의 전문적(?)인 감으로
최근 들어 하브루타(havruta) 교육을 많이 거론하고 있다. 하브루타는 짝 또는 친구라는 뜻이다.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유태인의 탈무드를 읽는 것이다. 탈무드 공부는 토론 방식인 하브루타 교육을 통해 이뤄진다. 상대방과 상호 질문·대답하며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이는 수천 년을 내려온 이스라엘의 전통적 방법이다. 하브루타 교육은 어릴 때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유태인들은 유아기 말이 트이기 시작할 때 토라와 탈무드를 가지고 하브루타를 한다고 한다.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다. 즉 가족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이러한 기반이 되는 것은 후츠파 정신이다. 후츠파는 히브리어로 ‘뻔뻔함, 담대함, 저돌성, 무례함’ 등을 뜻하는 말이다. 후츠파 정신은 어려서부터 형식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며, 때로는 뻔뻔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밝히는 이스라엘인 특유의 도전 정신이다. 후츠파 정신은 이스라엘의 가정교육에서부터 학교, 회사 등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대표적 교육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태인은 전 세계 인구의 0.2%이지만 지금까지 받은 노벨상은 전 세계의 22%에 해당한다.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