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왕'은 우선 이 작품이 일종의 수사극으로 짜여있다는 점에 주목되었다. 이 책에서 오이디푸스가 처음에 맞닥뜨린 문제는 '라이오스(오이디푸스 전의 왕, 아버지)를 죽인자는 누구인가?'였다. 그러다가 문제는 '내가 범인인가?'로 바뀌고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오이디푸스왕'을 그저 비극적인 내용이라 일컫는 단순한 독자들처럼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문장하나와 단어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여가며 읽어보니, '오이디푸스왕'은 흔한 비극적 운명이 아니라 정해진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운명극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끼달았다. 소포클레스가 진정 이 작품에 무엇을 담으려 한 것 인지는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저항에 맞서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진실을 밝혀낸다. 혹여 그것이 자신의 파멸로 이어진다 해도 개이치않는다. 이는 어떤 운명이 그를 좌지우지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진실을 향한 오이디푸스의 굳은 의지가 이뤄낸 것이다. 한데 이러한 입장을 소포클레스는 아주 작은 장치를 통해 슬그머니 밝히고 있다.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가 한 말이 그 장치이다. 그 사자는 자신이 '좋
성실한 불재였던 성진. 그리고 그가 인간세상에 환생한 존재의 양소유. 성진이 여덟명의 선녀를 만나고 잠깐 부귀영화를 요한 탓에, 그를 '후생각고'라 생각했던 스승 육관대사에게 죄를 입고 '양소유'로 환생해, 나중에는 불경한 생각을 한 것을 뉘우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담아낸 불교적 신앙이 드러난 글이다. 이글은 현세계에서 '오두백마생각'하다. 따라서 독자들은 다소 어리둥절 할 수 있는 글이다. 그러나 양소유의 삶의 궤적을 면밀히 살펴보면 환생전에 꾸었던 현실적 욕망 다름 아닌 애정욕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출세 욕구가 핵심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덟선녀와 만나 후 죄를 입어 인간세상에 떨어진것과 과거길에 오르며 여러여인들과 친분을 쌒은 것으로 보아 성진의 현실적 욕망은 불교에서 금하던 애정 용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책의 제목은 '성진과 팔선녀가 인간의 삶을 나타냈다 사라지는 구름'이라 하여 '구운몽'이다. 내용을 보면 여덟선녀와 성진이 각자의 상사에게 죄를 입어 인간세상으로 내려가, 애정을 나누는 부분이 '복잡다단'하다. 제목과 내용을 합쳐보아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성진'만이 부귀영화를 요하고, 애정욕망이라는
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제자 은희입니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저는 그동안 잘 지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은희야, 공부가 무엇인가 생각해본적있지?'를 읽고나니 깨달음에 앞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못난제자를 위해 글을 써주시니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글을 써주시는 교장선생님의 뜻과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할것 같아 두려운 마음 또한 듭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경험과 생각이 짧아 기량 또한 짧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깨달음을 얻을것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요즈음 율곡이이 선생님께서 쓰신 '성학집요'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글의 문장 하나하나가 깊이가 있고 위엄이 서려있어 이제 막 15살에 접어든 제게는 아직 어렵고 그 깊이를 잘못 들어갈까 두려워 조심스럽게 읽는 책입니다. 아직 쉰몇페이지 밖에 읽지 못했지만 저의 고민은 '성학집요'를 읽으며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공부는 무엇인지, 학문을 하는 뜻을 어떻게 세워야만 바르게 세워질지 등등이 저의 고민입니다. 때마침 교장선생님의 글을 보고 반가운마음이 들었습니다. 15살부터 시작된 김진애 박사님의 앎의 향한 긍지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처음엔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