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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불운의 사내, 오이디푸스왕

'오이디푸스왕'은 우선 이 작품이 일종의 수사극으로 짜여있다는 점에 주목되었다. 이 책에서 오이디푸스가 처음에 맞닥뜨린 문제는 '라이오스(오이디푸스 전의 왕, 아버지)를 죽인자는 누구인가?'였다. 그러다가 문제는 '내가 범인인가?'로 바뀌고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오이디푸스왕'을 그저 비극적인 내용이라 일컫는 단순한 독자들처럼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문장하나와 단어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여가며 읽어보니, '오이디푸스왕'은 흔한 비극적 운명이 아니라 정해진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운명극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끼달았다.

소포클레스가 진정 이 작품에 무엇을 담으려 한 것 인지는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저항에 맞서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진실을 밝혀낸다. 혹여 그것이 자신의 파멸로 이어진다 해도 개이치않는다. 이는 어떤 운명이 그를 좌지우지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진실을 향한 오이디푸스의 굳은 의지가 이뤄낸 것이다. 한데 이러한 입장을 소포클레스는 아주 작은 장치를 통해 슬그머니 밝히고 있다.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가 한 말이 그 장치이다. 그 사자는 자신이 '좋은 소식'을 전하면 뭔가 득을 얻지 않을까 해서 테바이로 왔다고 말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앞의 대사와 뒤의 대사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고개가 갸우뚱했다. 소포클레스의 문장의 앞이음과 뒷이음은 어느 문장가도 다르지 못할터인데, 문장의 이음이 끊어졌는 지가 도체 의문이었다. 결국 나는 그 문장에 소포클레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코린토스의 사자가 이득을 밝히는 속된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 뜻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이런식으로, 그러니까 신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들의 여러의도와 계획이 얽혀서 이루어진다는 뜻이 그안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가장 비극적이었던 장면은 오이디푸스왕과 한때는 그의 아내였지만,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광란에 젖어드는 장면이 아니었다. 흔히들 이 장면이 비극적이라 하지만, 숨겨져있는 진실은 언젠가 들어나는 법이니 사실이 드러난 것은 잘된 일이라 생각이든다.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아내로, 그리고 어머니는 아들을 남편으로 삼는 폐륜을 저질렀을 테니까. 어쨌든 나에겐 극의 마지막에서의 눈이 먼 오이디푸스가 나와 크레온에게끔 하여 자기딸들을 데려오게 하고, 딸들의 앞날에 대해 탄식하다가 크레온에게 제재를 받는 장면이 비극이었다.  이 장면을 자세히보면 오이디푸스가 비극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크레온을 상대로 원하는 것을 집요하게 요구해서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한다. 진리를 향해 돌진하던 때의 힘과 끈기가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비극속에 있으니 당연한 절망적 심열이 아니라 비극속에서의 '생'이 나에겐 쓸쓸한 아픔으로 느껴졌다. 또한 소포클레스가 나에게 무엇을 주려했는지의 강렬한 단서가 되어 주었다. 인간은 그저 운명에 종속된 존재라 아니라 자기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삶을 이루어 가는 주체라는 것을. 소포클레스는 나에게 비극을 맞이한 어느 한 왕의 얘기가 아닌 운명에 맞부딪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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