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三國遺事)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하던 시대는 몽골의 침입으로 국운이 위태로웠던 시기였다.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시대의 지식인 일연은 묵묵히 이 책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국가의 명을 받아 한 일이 아니었고, 따라서 추진할 수 있는 재력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지난 역사의 교훈과 그 시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꿈을 켜켜이 기록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시간에 대한 추상적 인식의 ‘역사(歷史)’가 아니라 민중의 삶이 집성된 ‘유사(遺事)’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삼국유사’의 첫머리에서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럽고 기이한 데서 나온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하겠는가?”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 첫머리에 단군을 자랑스럽게 올려놓았다. 황당한 이야기라 하여 ‘삼국사기’에서는 누락되었지만 일연은 그것이야말로 우리 선인들이 인식한 심정적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공유함으로써 그는 병란으로 찢긴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을 모아놓은 책’이기 때문에 역사서에서는 지나쳤던 작은 고을의 이야기나 개인의 꿈도 우리에게 남겨
- 정병헌 숙명여대 교수․국문학
- 2008-06-19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