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참고 참고 또 참으려고 했는데,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민호는 한바탕의 광풍이 지나간 평온한 눈을 들어 교사인 나를 쳐다보았다.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연신 가슴을 움켜쥔 승찬이의 셔츠를 살짝 들쳐 보니 줄넘기 자국이 빨랫줄 마냥 선명히 박혀 있다. ‘아이고, 얼마나 아플까?’ 상처를 본…
2021-02-03 16:18
“얘들아~ 이리 좀 와봐~” “왜요?”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대답이었다. “선생님이 좋은 거 보여 줄게, 여기 앞에 뭐가 보이니~” “풀밭이잖아요” “풀밭이지?” “예” “근데 얘들아, 이 풀밭 너희들이 한번 맡아볼래?” “예?” “우리들이 맡아보라고요?” “그래~” "이거 맡아서 뭐 하게요?” “…
2020-11-16 09:34
“○톡! ○톡!” 계절의 여왕이자 교사로서 조금은 낯 뜨거운 5월의 어느 날, 책상 위 핸드폰은 연신 울어댔다. 통신 쓰레기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그리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수업을 들어가고 업무를 처리하다가 그토록 나를 부르던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올라간 나의 입꼬…
2020-11-09 15:26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모토로 나름 살려고 노력해왔다. 침소봉대하지나 않을까 염려도 되고, 모토와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도 들지만, 34년의 짧지 않은 교단에서 겪었던 많은 경험들 중에서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또렷이 자리하고 있는 몇 가지 경험들을 정리해…
2020-11-09 14:56
(1. 그해 봄) 신을 믿지 않는 나에게 축복을 생각하게 한 사람이 있다. 3월, 봄이 왔건만 때늦은 추위로 따스함이 그리워지던 어느 날 교실에서 그 아이를 처음 보았다. 첫 수업 자기소개 시간에 해맑은 웃음을 지닌 소녀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A중학교에 와서 가장 기뻤던 일은 선생님…
2020-10-22 14:22
“선생님께서 어려운 사람 도와주라 가르치셨다 아임니꺼~!” 전화선 너머의 그 녀석은 37살의 아저씨 목소리로 익살스럽게 말했다. 서울살이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나랑 통화할 때는 여전히 거제의 13살 퉁명스러운 남자아이가 된다. “그래, 그랬었지, 그걸 기억하고 실천하는 네 녀석이 기특하다~…
2020-10-20 11:16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 흙이 되고 싶어요.’ 도종환의 '어릴 적 내 꿈은'이란 시의 구절을 새기며 품어 왔던 제 꿈은 교사였습니다.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유일한 꿈인 교사가 되고선 저만…
2020-10-14 12:39
매년 12월은 동아리 활동과 축제 준비로 정신없이 보내는 시기이다. 우리 학교에서도 12월 말에 있을 동아리 발표 준비로 학생들에게 참가 신청을 받고 참가 자격 여부를 점검하는 1, 2차 예심을 실시하였다. 행사 준비는 매우 순조롭게 흘러갔다. 3학년 밴드부, 2, 3학년 댄스부, 3학년 마술, 각 학년 개인별 노…
2020-09-24 16:03
“승규(가명)가 다쳤다.” 며칠 전 한동안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큰 사고를 당해 집에서 쉬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갑자기 승규가 보고 싶다. 수업을 왕따시키고 하루 종일 만화를 그리던 녀석, 연습장에 그린 만화가 친구들에게 인기를 얻어 번호표를 받고 순서를 기다리게 만들었던 녀석, 왠…
2020-09-24 15:50
2006년 3월 1일 충북 괴산의 목도리에 위치한 작은 시골 중학교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전교생 학생 수는 60명이 안 되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교사 소개를 하는 첫날! 애국가 제창을 부르는 몇 안 되는 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는 그 공간을 가득 채워 너무나 감동했습니다. 또한 가슴 떨리며 소개를 받고 아이들…
2020-09-10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