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닮았다. 교사라는 점이 같았고, 철학, 인문, 시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 비슷했다. ‘아이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랑받을 존재’라는 교육 철학이 통했다. 이름난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보다 차라리 그 돈으로 전시회 티켓을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맞닿았다. 어쩜 이렇게 말이 잘 통할 수 있는지 스스로 신기해할 만큼.
45년생 나태주 시인, 그리고 95년생 김예원 교사(부산시교육청 소속)는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다. ‘오십 해의 간극’을 뛰어넘어 6년째 우정을 이어가는 중이다.
두 사람은 최근 에세이 ‘품으려 하니 모두가 꽃이었습니다’를 함께 펴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 중에 김 교사에게 울림을 준 나태주 시인의 말을 골라 담았다. 사랑, 죽음, 사회생활, 인간관계 등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질문에 대한 답을 두 사람의 대화에서 구할 수 있다.
김 교사는 “취업 준비를 하고 직장에 첫발을 내딛는 과정에서 시인님이 해주신 많은 위로와 조언은 큰 힘이 됐다”며 “시인님에게 받았던 격려와 위로, 지혜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팬레터 한 통에서 시작했다. 대학생일 때 나태주 시인의 시에 푹 빠져 감사 편지를 썼다.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좋았던 영시 두 편도 동봉했다.
김 교사는 “문득 ‘많은 사람을 위로해 주는 시인님은 제대로 위로받고 계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글을 좋아하는 분에게는 글이 가장 큰 위안일 것 같아 시를 보내 드렸다”고 전했다.
“시 한 편은 번역본이 있었는데, 다른 한 편은 없었어요. 직접 번역하고 혹시라도 오역이 있을까 봐 한 줄, 한 줄, 저만의 설명을 달았어요.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에 답장을 받았죠.”
이들의 대화에선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상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인정하고 수용한다. 서로 다른 생각도 대화를 이어가면서 중간 지점을 찾거나 상대를 존중한다.
김 교사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시인님은 어떨 땐 관리자의 관점에서, 때로는 동료 교사의 관점에서, 아빠의 관점에서 조언해주신다”고 귀띔했다.
“첫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선배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지금까지도 큰 힘이 돼요. 일을 계속하다 보면 도저히 못 버티겠다 싶을 만큼 힘든 순간이 올 텐데, 그때 다른 사람들은 그런 순간을 어떻게 넘기는지 지켜보라고요. 어떤 어려움을 겪든 너의 편이 돼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죠. 시인님께 여쭸어요. 정년까지 직장 생활하면서 힘들 때 시인님의 손을 잡아 준 사람이 있었는지를요.”
나태주 시인은 "있긴 했지만, 오래도록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대신 시에 기대 견디고, 욕심내지 않으려 했다고. 김 교사는 그동안 배려심 많고 존경스러운 동료를 만나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이내 우리 인생에서 홀로 서서 이겨내야 할 때가 훨씬 더 많다는 걸 깨닫는다. 나태주 시인이 말하는 ‘욕심내지 않기’는 이렇다.
‘더 나아가기 위한 특별한 과업을 하지 않는 거야. 예를 들어 내가 교장이었으니 특별한 교육청 사업을 하면 점수를 따로 더 나아갈 수 있었어. 근데 그러지 않았어. 그저 교장 자리만 지켜냈어.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고 거기까지로 만족한 거지.’
김 교사는 “너무 힘들 땐 잘하려고 하지 않고 오늘을 버텨보자고 생각했다”면서 “오늘을 버티고 넘기고 나면 일주일이 지났고, 또 잊히더라”라고 했다.
직장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김 교사에게 주변에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그는 말한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글을 쓰면서 풀고, 글 쓰는 과정에서 힘이 들면 다시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 에너지를 받는다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의 선순환’이다.
김 교사는 “N잡러인 시인님도 때론 힘에 부쳐 보이지만, 모든 일 자체가 시인님에게 원동력이 돼주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권태감은 누구에게나 와요. 그럴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환기를 시키고, ‘나한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요. 즐겁게 이겨내려고 노력하죠. 시인님과 함께 세상에 꼭 필요한 책을 쓰자, 하면서 썼어요.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직장인,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 가치관을 정립할 시기에 있는 청소년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