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이나 발리, 필리핀의 번잡한 바다가 싫다면 대안은 오키나와다. 들뜨거나 수선스럽지 않다. 평화롭고 아름답다. 깨끗하고 싱그럽다. 조용하고 고요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프리미엄급이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에서 남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섬이다. 아니 섬들의 모임이다. 가장 큰 섬인 나하를 중심으로 160여 개의 섬들이 모여 있다. 연평균 기온은 23.1도. 겨울에도 16.8도를 유지하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아열대 기후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키나와인들은 순하고 낙천적이기로 유명하다. “난쿠루 나이사(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말을 달고 산다.
지리적으로도 일본 본토보다는 대만에서 더 가깝다. 고대에는 일본이 아니라 독립 왕국이었다. 왕국의 이름은 류큐. 해상무역으로 번창하다 메이지 정부에 의해 오키나와현으로 귀속됐다. 이후 미국 점령을 거쳐 1972년 비로소 다시 일본 영토로 재편입됐다.
아시아의 하와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키나와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은 오키나와의 본섬인 나하로 간다. 리조트에 머물며 렌터카를 빌려 섬을 돌아본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오키나와에 딸린 작은 섬들을 찾는다. 고하마지마·다케토미지마·미야코지마 등이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 작은 섬들이다. 지마는 섬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출발점은 이시가키다. 나하공항에서 남쪽으로 410km를 다시 날아가야 닿는 곳이다. 이시가키를 베이스캠프 삼아 고하마지마와 다케토미지마, 미야코지마 섬을 즐길 수 있다. 이시가키섬은 1999년 클럽메드가 문을 열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풍광은 우리나라 제주도와 비슷하다. 바닷가에 굴러다니는 크고 작은 돌들을 주워 와 담을 쌓았다. 듬성듬성 대충 쌓아 올린 것 같지만, 웬만한 태풍에는 끄떡없다고 한다.
이시가키공항에 비행기가 닿을 무렵, 창밖으로 보이는 물빛에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짙은 초록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바다, 그 바다 아래로 알록달록한 산호초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사람들이 왜 이곳을 ‘아시아의 하와이’라고 부르는지 절로 이해가 된다.
오키나와에 도착하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장식물이 있다. 사자 모양의 수호신인 ‘시사’다. 건물의 문이나 지붕, 마을의 언덕 등에 세워놓는데, 집과 사람, 마을에 재앙을 가져오는 악령을 막아준다고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입을 벌린 시사와 입을 다문 시사 두 종류가 있는데, 입을 벌린 시사는 암컷으로 복을 불러오고 입을 다문 시사는 수컷으로 재앙을 막는 역할을 한다.
기분 좋은 바람과 만나다
이시가키섬을 나와 첫 목적지인 고하마지마로 향한다. 이시가키섬 선착장에서 고속 페리를 타고 25분을 가면 닿는다. 내리는 이들 가운데는 골프백을 든 이들도 보인다. 고하마섬에 골프장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일본 최남단 골프장이라고 한다. 바다를 향해 티샷하는 9번 홀과 일본 최서단(12번)과 최남단 티(7번) 앞에서의 기념 촬영은 필수다.
고하마지마에는 ‘리조나레 고하마지마’라는 꽤 괜찮은 리조트가 있다. 섬 동남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구릉지대에 위치한 발리 스타일의 리조트다. 카페가 딸린 전용 해변도 있고 지중해 스타일의 전망 레스토랑도 클럽하우스에 있다. 리조나레의 콘셉트는 ‘마하에 로맨틱’. ‘마하에’는 초여름에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을 뜻하는 말로 이 바람을 타고 옛사람들이 여러 나라를 돌며 무역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낭만을 찾길 원하거나, 가족들과 함께 호젓한 휴가를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고하마지마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은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이다. 해변에서 보트를 타고 10분 정도 가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이 바위가 다이빙 포인트란다. 너무나 물이 맑아서 보트의 그림자가 해저에 그대로 비칠 정도다. 10분 정도 가이드에게 설명을 듣고, 드라이슈트를 입고, 오리발을 차고, 수경을 쓰고, 바다로 텀벙 뛰어들었다. 수중에는 알록달록 다양한 열대어와 독특한 모양의 산호초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함께 한 스쿠버 다이빙 전문가는 오키나와는 스쿠버 마니아들이 꼭 오고 싶어 하는 곳으로 꼽힌다고 자랑이다.
완벽한 휴식의 섬 다케토미
다케토미지마는 섬의 넓이가 고작 5.42km²밖에 되지 않는 아담한 섬이다. 제주도에 딸린 섬 우도(6km²)보다도 작다. 섬의 둘레도 채 10km가 안 된다. 이 섬에 살아가는 인구는 고작 300명 남짓. 하지만 연간 관광객 수가 무려 4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다케토미는 일본에서도 전통 류큐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손꼽힌다. 붉은 기와로 만들어진 집과 하얀 모래를 깔아놓은 길 등 다케토미에서 만나는 풍경은 일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검은 돌담이다. ‘굿쿠’라고 부른다. 제주도의 돌담과 꼭 닮았다. 집들은 이 돌담 사이에 숨어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돌이 아니라 산호다. 돌담 사이로 난 길은 하얀데 그것 역시 산호다. 담도 애초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때를 타서 검게 변한 것이다. 다케토미는 해저가 융기하면서 산호가 솟아올라 만들어진 섬.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호인 셈이다. 집과 집을 잇는 길은 반듯하지 않은데, 이는 거센 바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집의 출입구도 독특하다. 대문 없이 담 사이에 담을 하나 더 엇갈리게 세워놓았다. 이는 직진밖에 못 하는 귀신을 막기 위한 것이란다. 주인은 왼쪽, 손님은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섬의 예절을 지키는 것이라고도 한다.
다케토미섬을 여행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관광용 물소 달구지를 타는 것. 물소가 끄는 옛날 달구지를 타고 느릿느릿 마을 곳곳을 돌아본다. ‘서라’, ‘가라’ 등 주인 말을 알아듣는다. 주인은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붉은 기와집이 옹기종기 모여 골목을 이룬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자전거로 섬을 돌아보는 데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은 호시즈나 해변이다. 별모래 해변이라 불린다.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인데 정말 별처럼 생겼다. 이는 별 모양의 유공충 껍질이 말라 모래와 섞인 것. 밤에도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해변을 찾은 여행객들은 모두 허리를 구부리고 별모래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일본에서 가장 투명한 물빛, 미야코섬
마지막 여정은 미야코지마다. 미야코지마의 자랑은 투명한 물빛이다. ‘미야코지마 블루’라는 이름이 생길 정도로 특유의 맑고 아름다운 빛깔을 담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맑은 바다빛이라고 한다.
미야코섬의 절경은 섬의 동남단에 위치한 히가시헨나자키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동그란 바위들이 떠 있다. 바다를 향해 2km가량 길게 뻗은 육지의 끝에는 흰 등대가 바다를 보며 서 있다. 히가시헨나자키는 일본 100대 절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미야코섬 어디서든 이 절경을 느낄 수 있지만, 특히 스나야마 비치와 이케마 대교가 미야코의 경치를 느끼기 좋은 장소다.
미야코섬에는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유키시오는 미야코의 특산 소금이다. 바닷물을 순식간에 증발시켜 만든다. 일반 소금과 달리 입자가 곱다. ‘눈소금’이라고 불린다. 유키시오를 만드는 공장에서는 유키시오로 만든 소금과자·아이스크림 등을 맛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아와모리 타라가와 주조장, 독일문화촌 등을 둘러보면 좋다.
돌아오는 길에는 나하에 들러보자. 그래도 오키나와의 본섬인데 빼먹으면 섭섭하다. 나하 시내에 자리한 슈리성은 류큐 왕국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건축양식이 전혀 다른 북쪽 궁전과 남쪽 궁전이 마주 보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쪽은 전형적인 일본식 목조건물, 다른 한쪽은 붉은빛이 도는 중국풍의 느낌이다. 중개무역을 하던 작은 왕국이 실리외교를 펼치면서 만들어진 특징이라고 한다. 오키나와 전쟁 때 모두 불타버렸으나 지금의 모습으로 일부가 복원, 지난 1992년 슈리공원으로 개원했다.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나하시 중심에는 국제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현청 앞에서부터 약 1.6km(1마일) 사이에 토산품점·음식점·쇼핑센터 등이 줄지어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후 지금과 같은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신해 ‘기적의 1마일’이라 불린다. 국제거리에서는 뱀술·시샤 등과 같은 다양한 현지 기념품들과 본토와는 다른 오키나와 특유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라후테는 오키나와 향토 요리인데,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삼겹살 덩어리 조림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수육과 비슷하고 동파육과도 닮았다. 삼겹살 덩어리를 삶아 수용성 지방을 제거한 다음 간장과 아와모리(오키나와 소주)를 넣고 오랜 시간 졸여서 만든 음식이다. 오키나와 어디에서든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