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고전은 ‘문사철’의 총체
시간, 여유 없는 요즘 아이들
긴 호흡으로 느끼게 해주고파
“수업을 바꾸고 싶었어요. 연수를 듣고 거꾸로 수업, 놀이 수업도 도입해 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벤트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교육과정과 연계한, 지속 가능한 수업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독서 수업’이 떠올랐어요. 한문 교과에 독서를 연계해 보자고 마음먹었죠.”
디지털 네이티브인 요즘 청소년들은 긴 글 읽기를 꺼린다. 대신 짧은 영상과 요약한 글을 선호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고전, 특히 동양 고전은 더욱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김연수 광주 치평중 교사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수년째 중고생들과 ‘인문 고전 읽기 수업(이하 고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 교사는 “교과서의 짧은 문장으로 고전을 접하다 보니,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면서 “긴 호흡으로 고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학업에 신경 쓰느라 고전을 읽을 시간도, 여유도 없는 학생이 많아요. 사실 고전은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운 책이잖아요. 수업 시간에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 나눌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김 교사의 고전 수업은 인문 고전 맛보기(1학기), 한 권 깊이 읽기(2학기)로 구성된다. 1학기에는 동양 고전 10권 가운데 모둠별로 책을 선택, 함께 읽은 후 독서 기록지 작성, 책 수다를 나눈다.
독서 기록지에는 ▲인상적인 부분 ▲새로 알게 된 어휘 ▲질문 만들기 등 차시마다 주제를 달리해 기록한다. 한 달 후 모둠별로 읽은 책에 대해 발표하고, 작은 책자를 만들어 전시도 한다.
2학기에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반 전체가 함께 읽는다. 차시마다 중요 부분을 발췌독하고 질문지 작성, 토론 등을 통해 자기 생각을 마음껏 이야기 나눈다.
김 교사는 “‘고전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고전은 재미있는 책’이라던 학생들의 후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삼국유사’의 ‘사’는 역사가 아닌 일을 의미한다는 점, 마구간에서 불이 났는데, 공자는 사람이 다쳤는지만 묻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는 점, ‘조선상고사’는 원래 조선사였는데, 신채호의 죽음으로 ‘조선상고사’로 남은 점과 같이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알고 나니, 고전에 재미를 느끼더군요. 수업을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기회를 주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죠.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는 것도요.”
최근 김 교사는 ‘청소년을 위한 위대한 동양 고전 25권을 1권으로 읽는 책’을 펴냈다. 더 많은 청소년이 고전의 묘미를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서울대 권장 도서를 포함해 학교 내신 시험과 수능, 논술에서 자주 출제되는 고전 25권을 선정했다. 시대적 배경과 저자의 삶, 현재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통해 고전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구성했다.
김 교사는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미래 사회에는 인간에 대한 학문, 인문학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의 하나로 ‘인문학적 소양’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옳고 그름을 구별해 가치판단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는데요. 직접 경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 필요하죠. 어렸을 때는 전래동화로 경험할 수 있고, 커서는 고전이 그 역할을 합니다. 고전은 문학, 역사, 철학의 총체입니다. 고전은 우리에게 사유의 기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연습의 기회를 제공하죠.”
고전 읽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김 교사는 현재 수준보다 한 단계 낮은 책에서 시작할 것을 권했다. 고등학생은 중학생 수준의 책을, 중학생은 초등학교 수준의 책을 읽는 식이다. 만화로 구성된 책도 괜찮다.
그는 “아이들에게 고전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과 똑같다”며 “처음부터 완역본을 읽기보다는 먹기 좋은 형태로 맛을 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인물 중심으로 읽는 방법도 추천했다. 가령, 논어보다는 공자의 삶과 시대적 배경 등을 먼저 접하고 나서 공자의 생각과 주장을 짧은 문장으로 확인하는 식이다. 김 교사는 “동양 고전을 읽다 보면 한자는 필연적으로 만나는데, 전체 문장을 다 알려고 하기보다 핵심 한자 한두 글자만 알자는 생각으로 접근해 보라”고 귀띔했다.
“책에 ‘생각해볼까’ 코너를 수록했어요. 수업하듯, 핵심 내용을 짚어주고 싶었거든요. 스스로 주제를 정해 탐구하고 생각을 확장하도록 질문거리도 담았고요. 학업에 필요한 배경지식을 쌓고 생활기록부 교과세특에도 활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수업하던 장면을 상상하면서 집필했어요. 평생 써먹을 수업 자료를 완성한 느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