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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대한민국 교육을 보다 정의롭게 구현하려면

1961년 미국의 존 F. 케네디 행정부는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대학입시에 이른바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의 시작을 도입했다. 이로써 미국은 지난 60년 동안 대입에서 ‘지역별 비례선발제’로 줄기차게 적용해 왔다. 하지만 2023년 미국 대법원에서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인종에 기초한 적극적 우대조치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하면서 향후 인종보다는 사회적·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보장하는 입학정책으로 방향을 틀 것이 예측된다. 이는 우리에게도 ‘지역인재 선발’의 보다 상향된 제도로 상위권 대학의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의 필요성과 함께 교육의 정의를 실현하는 교육개혁을 강화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최근 한국은행 총재는 과열된 입시 경쟁에 따른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상위권 대학의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했다.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이 한은의 금리 조정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다소 이색적인 경제정책의 방안을 제시했다. 어찌 보면 경제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한은 총재가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사회 불평등의 해결 방안으로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한 것은 비록 실현의 가능성이 희박하다해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고 정치권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과 대책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는 현 정부가 내세우는 교육개혁의 고삐를 조이는 정책으로 국민적 합의와 결단의 의지만 있으면 못할 것도 없다고 본다.

 

서두에서 제시한 미국의 적극적 우대조치는 전 세계에 보편적인 입학정책으로 퍼져 나갔다. 프랑스에서는 1981년 ZEP(Zone d'Education Prioritaire) 정책을 도입해 경제적·사회적으로 어려운 지역의 학생들에게 더 많은 교육적 지원을 제공해 모든 학생에게 공정한 교육 기회를 보장했다. 북유럽의 교육선진국인 스웨덴에서는 고등교육을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모두가 공정한 교육기회를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부족하기에 경제적·사회적으로 불리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대학에 더 쉽게 진학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컨텍스트 기반 입학정책(Contextual Admission)'이라는 제도를 통해 대학 지원자의 학업 성적 외에도 사회적·경제적·지역적 배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학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또 OFFA(Office for Fair Access)라는 기관을 설립해 대학들이 배경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입학정책의 공정성을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유교무류(有敎無類)’, 즉 교육을 받을 평등한 권리를 위해 빈부의 차별이 없는 교육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교육을 구현하는데 나서고 있다.

 

대한민국도 2021년을 기점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했지만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자녀 세대의 계층 이동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인식은 2009년 48.3%에서 2023년 29.1%로 거의 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사회구조적 불평등 문제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증거다. 이제 우리는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더 나은 사회로의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국민 다수가 느끼고 있다. 이보다 앞서 세계 각국은 대부분의 대학 입학에서 그야말로 다양성의 지평선을 넓히기 위해 지역별 비례선발제가 그 대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한국은행 보고서 ‘상위권 대학 지역비례 선발제’를 기반으로 현재 대학별 20% 정도의 ‘지역균형 선발’을 뛰어 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교육열 현상은 특정지역 쏠림현상으로 심화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서울의 강남지역이다. '교육특구 강남8학군'이라는 말이 1980년대 후반부터 언론에서 대서특필되면서 어느덧 좋은 대학을 보내려면 강남에 거주해야 한다는 불문율로 정착돼갔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서울의 부자 지역을 중심으로 여섯 살부터 학원에 보내고 초등학교 3학년에 이른바 ‘의대 진학반’을 운영하는 초과열 양상은 아이들의 행복을 떠나 부와 학벌의 세습이란 악순환을 부채질하기에 이제는 심각하게 국민적 논의를 할 때이다. 최근의 과도한 ‘선행학습 규제법’의 발의도 이런 맥락과 연관이 깊다.

 

우리나라는 '소득 상위 20%' 집단이 '하위 20%'보다 상위권 대학 진학 가능성이 5.4배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학생의 성적은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75%, 학생의 잠재력에 의해 25% 결정된다. 거주 지역별 사교육비 격차 역시 상위권대 진학률 차이를 만들어 낸다. 예컨대 서울 강남지역의 고등학생들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인 반면에 서울대 진학생의 12%, SKY 대학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서울대 점유비율이 3배 정도 다른 지역보다 높은 것은 ‘강남불패’란 야욕을 키워 심각하게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하고 교육의 공정성과 정의를 해치는 악재임에 분명하다.

 

국민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헌법정신이며 모든 국민의 소망이다. 최근 국가교육위원회의 국가교육발전계획 초안은 경쟁을 지나치게 당연시하고 나아가 이를 더욱 부추기는 악순환의 연장일 뿐이다. 따라서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공정한 사회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높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다른 선진국들처럼 우리도 적극적 우대조치의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역차별이란 그럴듯한 이유를 불식하고 국가의 운명이 인재 양성의 백년대계에 달려 있음을 깨달아 전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사회적·경제적·지역적 차별 없이 공정한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는 정의로운 국가가 되도록 교육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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