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점가에는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소설책 열풍이 불고 있다. 보도 기사에 의하면 베스트셀러 10위 가운데 8개가 한강 작품이란다. 이를 기회로 방방곡곡에 독서모임과 노벨상 작품 구입 등 열풍이 확산되어 정신문화의 촉매제가 되기를 소망한다.
책을 샀다고 내 것이 아니며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읽어내야 의미가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작품이 되었다고, 베스트셀러 소설책이라고 곧바로 아이들에게 정신적 양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해조차도 어려운 아이들도 많고, 문자를 소리내어 읽는다고 마음 속에 감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도서시장에서 책이 많이 팔린다고 나와 의미가 연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문해력을 갖춰야 이해가 되는 것으로 읽고 또 읽어 소화하고 깨우칠 때 비로소 자신을 살찌우는 정신적 양식이 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독서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우리 현실 속의 아이들은 학교 수업, 방과후 수업, 그리고 여러 학원들, 숙제하고 복습하며 하루 동안 배운 것을 소화하는 시간까지 24시간이 모자라다. 그야말로 테트리스처럼 빈틈없이 하루일과가 짜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알차게 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그런 아이들을 응원한다. 하지만 내심 살포시 걱정이 깃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의 내면 역시 잘 짜인 천처럼 짱짱한지 말이다.
불신이 가득한 현실 정치, 재판이 횡행하여 격무로 판사가 비명을 지르는 사회, 거짓과 불신은 이 사회의 행복을 갉아먹는 무서운 해충이다. 지금 다수의 사람들이 혼란스런 정치상황을 보면서 낙담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그런데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나와 나 사이, 나와 우리 사이, 나와 일 사이 다양한 관계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틈틈이 스며들게 된다. 한국이라는 국가공동체가 희망을 보이려면 모든 사람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관계가 행복해야 가능하다.
이러한 관계를 바르게 배울 수 있는 곳이 학교다. 동양문명의 한 축을 이룬 공자가 학교를 정식으로 꾸린 기간은 죽기 전 3년 정도에 불과하다. 69세라는 나이에 조국인 노나라에 돌아와 73세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3년 남짓이 '교사'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친 기간이었다.
논어를 읽어보면 공자의 학교는 열린 학교이자 엄격한 학교였다.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다 열려 있는 문, 그러나 옳게 배우려 들지 않는 이는 꾸짖는 엄격함, 이것이 공자 학교의 모습이었다. 자유로울 수 있으나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공자 학교의 특징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질문하지 않으면 답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이를 가장 잘 증거해 주는 책이 바로 <논어>다. 논어는 유교의 핵심을 이루는 경전으로 조선의 선비들은 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마음을 단련하였다. 시험은 사지 선다형이 아니라 암송도 강조하였으며 토론하였다. 논어의 대부분은 제자들이 스승에게 질문하여 획득한 답변들로 이뤄져 있다. 질문할 줄 아는 자만이 제자이며, 질문에 정답을 내릴 수 있는 자가 스승이다.
2500년 전 이같은 훌륭한 교육의 중심축이었던 <논어>를 고향의 후배들에게 전하는 선배들이 있어 지역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지금 농촌의 학교는 인구 감소로 학생 수가 줄어 폐교 직전에 놓은 학교들이 대부분이며, 70~80년대 1000여 명이 넘었던 학교도 5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앞으로 이러한 학교가 얼마 안 가 사라질 가능성도 높아 눈 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학교 후배들에게 배움의 소중함, 선비정신의 회복과 우리 사회에 사라져가는 효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성인이 된 선배들이 <논어> 보내기에 앞장 선 것이다.
정남진으로 알려진 장흥의 대덕중, 용산중, 안양중 학생들은 청소년들이 술술 읽을 수 있는 논어를 선배들로부터 받아 읽고 있다. 이는 바로 자신의 성공을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소중한 나눔의 열매다. 이러한 기부운동에 동참한 지역 학교 선배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이를 계기로 더 많은 학교 선배들이 참여하는 것이 소망이다. 한 번이라도 청소년기 시절 내가 읽었던 책의 기억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