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5 (화)

  • 구름많음동두천 4.3℃
  • 흐림강릉 5.0℃
  • 구름많음서울 5.0℃
  • 구름많음대전 4.9℃
  • 구름많음대구 6.7℃
  • 구름조금울산 8.8℃
  • 구름조금광주 5.6℃
  • 구름조금부산 8.3℃
  • 구름많음고창 4.5℃
  • 흐림제주 8.0℃
  • 흐림강화 4.7℃
  • 맑음보은 4.4℃
  • 구름많음금산 5.1℃
  • 구름많음강진군 6.8℃
  • 구름많음경주시 8.9℃
  • 구름조금거제 6.3℃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문화·탐방

오직, 정성을 다하라

나와 세상을 바꾸는 것

작은일에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

  -중용 23장, 영화 <역린>의 명대사 중에서

요즈음 여가 시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나 시리즈물이다. 눈이 어둡다는 핑계를 대고 독서 대신 하루에도 몇 편씩 폭식을 할 때도 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나는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한다기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 한 문장에 더 귀를 기울인다. 영화 한 편이 주는 감동과 울림을 만나기 위해 몇 시간씩 투자하는 셈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곧 작가의 감성과 사상을 만나는 일이다. 명작의 힘은 곧 작가가 갖춘 참신한 시선과 울퉁불퉁한 사상이 신선한 지혜를 갖춘 작가의 뇌와 가슴을 통과하며 걸러진 언어의 힘에서 나온다.

작가는 어디에서 그런 힘을 얻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한 것일까. 영화의 배경지식을 찾기 위해 쏟았을 작가의 시간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나는 작가를 존경한다. 그의 노고와 열정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되고 감동의 눈물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나는 서두에 인용한 중용 23장을 영화 <역린>을 관통하는 주제로 보았다. 정치적 희생의 제물로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잃은 정조 임금이 뼈저린 한과 피맺힌 서글픔 속에서도 극히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군주였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정조 임금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서 더 몰입이 되었다. 만약 정조 임금의 치세가 더 유지되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불행하게 끝나지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세종대왕 다음 가는 훌륭한 군주의 모습으로 내 안에 남아 있는 왕이라서 더욱 그러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잃은 정조 임금이 가졌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린 정조에겐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그것도 뒤주에 갇힌 채 죽어가는 아버지를 봐야 하는 처절한 고통을 겪었으니!

암살의 위험이 도사린 궁중에서 살아 남기 위해 또 얼마나 가슴 졸이며 살았겠는가! 그러니 정조 임금은 자신의 대를 이을 건강한 후손을 두는 데는 실패했는지 모른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임금이었으니. 그가 만약 건강하고 지혜로운 왕자를 두어 대를 잇게 했다면 조선 후기의 불안정한 역사의 시계를 돌리게 했을 것이므로.

이 영화에서는 정조 임금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영화의 전편을 채운다. 살벌한 배경, 살인과 암투가 벌어지는 무서운 진행에도 불구하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정신은 중용 23장이다. 정조 임금은 '오직 정성을 다하는' 그 정신을 실천한 왕이다.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사람을 귀히 여긴 왕이었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의 중흥을 이끌었다.

영화 속에서 만난 중용의 한 문장이 내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귀한 경험을 하였다.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묻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만나는 모든 순간의 그 작은 일, 하나가, 찰나의 선택은 아주 사소한 작은 것들의 집합임을!

그러므로 이 세상은 그 작은 것들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명체의 시작이 내 존재의 출발점이고, 바람에 날리며 깃털에 숨긴 씨앗 하나가 거대한 숲을 이룬다. 자음과 모음, 몇 자 안 되는 그 작은 기호의 시작이 시를 짓게 하고 세상의 모든 말을 만든다. 소설과 영화를, 사람과 세상을 연결한다.

아주 작은 일,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순간에 만난 사람에게도, 먼 발치에서 스치듯 지나는 길고양이 한 마리에게도, 발 밑에 채이는 풀 한 포기마저도 귀한 대접을 해주며 살고 있는지 되볼아보며 생각이 멈추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다시 가슴을 때리는 한 문장을 찾아 나선다. 하늘과 땅에 가득한 이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에게 정성을!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