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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우당탕탕 우리 반 소파 이야기

몇 해 전 4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이야기다. 교실에 2인용 소파를 갖다 두었다. 학기 초 회의에서 교실에 쉴 공간과 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학생들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학생 수가 20명 남짓이라 교실 한구석에 여유 공간이 있어 그 공간을 함께 채워나가기로 하였다. 열심히 손품을 판지 일주일 만에 인근의 어느 상점에서 무료 나눔을 받아 왔다. 아이들의 의견을 모아 소파 주변에 매트도 깔고, 읽을 책과 보드게임·인형도 마련하였다. 


함께 소파 근처 공간을 만든 아이들은 처음에 굉장히 뿌듯해하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소파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소파로 달려가 자리를 차지하느라 아수라장이 되었다. 소파를 차지하고 지키는 것이 아이들의 주된 놀이가 되었다. 다른 놀이는 사라졌고, 주변은 너무 소란스러웠으며, 다툼이 생기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나며 불편함을 호소하는 아이들도 더 늘었다.

 

소파가 쏘아 올린 시민의식
개입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꾹 참고 지켜보았다. 그리고 일주일째 되는 날 아이들에게 물었다. 
“소파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나요?”

아이들은 하나둘 불만을 쏟아 내었다. “아이들이 소파 근처에 몰려 있어서 시끄러워요.”, “저는 자리가 멀어서 소파에 앉을 수가 없어요. 불공평해요.” 사실 예상했던 답이었다. 다시 아이들에게 물었다. “우리 반 소파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 아이가 말했다. 

“소파를 버렸으면 좋겠어요.”

 

아이 대부분이 동의했다. “맞아요, 소파가 오고 난 다음에 교실이 너무 시끄러워졌어요.”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잠시 침묵하다 다시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소파 때문에 교실이 소란스러워져서 불편한 감정이 드는군요. 그래서 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나 보네요. 만약 친구와 다툼이 생길 때마다 친구와 절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가정을 버릴지도 몰라요. 또 학교에서 폭력이 생기면 학교도 없애야 하겠지요?”

 

아이들은 의아해하였다. 한 아이가 말했다. “그건 너무 간 거죠. 그건 아니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축구 때문에 다툼이 생긴다고 전교의 축구를 모두 금지한다면 어떨까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못 하게 하고 없애면 우리는 언제 배울 수 있을까요? 해보지 않고 갑자기 잘하게 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끄덕였다. 이어서 학급회의를 하여 ‘소파 사용 규칙’을 만들었다. 요일별로 한 모둠씩 소파를 사용하기로 했다. 마침 다섯 모둠이라 일주일에 한 번 온종일 사용할 수 있었다. 모둠 내의 사용 순서는 구성원끼리 자율적으로 정하기로 했다. 예외 규정도 두었다. 만일 감정이 격해져서 마음을 진정시켜야 하거나 피곤해서 잠깐 쉬어야 할 친구들이 있다면 순서와 관계없이 양보하기로 하였다. 이번에 내가 양보하고 배려하면 다음에 내가 양보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한다.


그 이후 학년이 끝날 때까지 소파가 큰 문제가 된 적이 없다. 작은 갈등이 생기면 우리가 만든 약속으로 잘 해결되었다. 아이들은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배우는 멋진 시간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갔다. 함께 만든 약속을 함께 지키며 우리 반 소파는 모둠활동을 할 때, 학생 동아리시간, 책 모임 시간, 동화 속 인물을 인터뷰하는 시간 등 다양한 시간에 잘 활용하였고 우리 반의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성장은 ‘효율성’이 아닌 ‘실수’에서 시작한다
존 듀이는 경험은 인간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고 사고는 이러한 경험을 해석하고 재구성한다고 보았다. 이때 사고는 단순히 경험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경험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작용한다고 하였다. 


아이들은 문제상황을 맞이하면 자연스레 생각을 하게 된다. 기존 지식이나 경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상황은 사고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사고는 문제를 인식하고, 분석하며, 그 해결방안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작용한다. 사고는 단순히 경험을 정보처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성적 사고를 통해 재구성하고 깊이를 더한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이 늘 자동적으로 의미있는 사고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며, 문제상황에서 자신의 수준을 넘어서는 통찰과 해결책을 항상 찾기 어려울 수 있다. 학생들이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도록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거트비에스타는 교육에서 ‘지지·개입·지연’을 강조하였다. 학생들의 생각·표현·경험을 지지하며, 어려워할 때 개입하여 돕고, 지나치게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행착오와 실수를 권장하고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이들의 경험이 의미 있는 학습으로 연결되려면 사고과정이 필요하다. 마음껏 실패하고 실수하며 시행착오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며 교사의 촉진적 질문도 중요하다. 

 

우리 교육의 고질적 문제 … 지나친 안전과 효율성 추구
지나치게 안전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 교육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이다. 안전은 인간의 삶과 교육의 기본이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안전만이 최고의 가치가 된다면 세상을 향한 탐색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에 정답을 찾는 교육만 경험한 학생들은 절차적 사고, 근거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논리적 사고를 키우기 어렵다. 플라톤은 다른 이들의 생각을 그저 따르는 존재를 노예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은 주체적인 시민을 기르고 있는가, 생각 당하는 노예를 기르고 있는가?


학교는 가정과 사회의 중간 지대로 학생들이 머물며 마음껏 실패하고 실수하며 배우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들이 시도하고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가? 실수와 실패는 반성적 사고의 기회가 되며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아주 큰 배움의 기회이다. 거기에 학교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교육의 내용과 방법은 학생들의 성장에 효과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효율적일 필요는 없다. 천천히 과정을 탐색하며, 실수와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넘어졌을 때 잘 일어날 수 있는 법을 천천히 체득해 나가며, 타인에 대한 공감, 창의적 사고력, 비판적 사고력, 논리적 사고력 등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금지하고 버리는 것을 선택하는 교육, 천천히 머물며 사고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결과를 빠르게 암기하고 정답을 찾는 것은 분명 주체적 시민을 기르는 교육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생각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극단적 사고를 유도하는 이들과 미디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설득당하고 세뇌당하여 공동체에 해가 되며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을 하게 될 우려가 있다. 


학교가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시민을 기르는 시간과 공간이 되려면 교육의 내용과 방법은 학생들의 삶의 경험과 배움을 연결하고, 문제상황에서 사고하도록 도우며, 실패와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는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안전을 추구하면, 어떠한 시도도 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효율성을 추구하면, 과정과 절차 그리고 반성적 사고를 경험하기 어렵다. 우리 교육이 조금만 덜 안전하고, 조금 덜 효율성을 추구하며, 아이들이 마음껏 시도하고 실패와 실수를 통해 성장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공동체와 협력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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