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역대 최연소 여성 장관으로 루스 켈리(Ruth Kelly)씨(36) 가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어 신선한 파문이 일고 있다. 이번 내각 조정은 블랑켓 내무부 장관의 사임에 의해, 클라크 교육부 장관이 내무부 장관으로 옮겨가고 그 공백에 캘리씨가 임명되었다.
그녀는 36세라는 약관의 나이와 네 아이를 가진 젊은 어머니로서, 육아와 자녀교육에 힘들어하는 어머니들로부터 동질감을 느끼며, 교육정책에 보다 ‘어머니 중심적’인 사려가 반영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부유층 집안의 자녀로 태어나, 연간 수 천 만원의 수업료를 지불하는 사립학교를 거쳐, 옥스퍼드 대학과 런던대 정경대 석사라는 초일류 엘리트 과정을 거친 그녀가, 얼마만큼 ‘서민 어머니들’이 가진 자녀 교육 문제에 공감해 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녀가 97년 정계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가디언지 경제부 평론가(1990-94), 영국 중앙은행(1994-97)에 근무했으며, 1997년 맨체스터 근교의 볼톤 지구 노동당 의원으로 당선, 정계 입문 된다. 정계에 들어 선 그녀는 농수산부 장관 보좌관(1998-2001), 재경부 차관보를 거쳐, 2004년 9월, 정부 내각 대변인으로 임명된 지 3개월 만에 교육부 장관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한 셈이다.
3년간의 재무부 차관보 시절, 블레어 수상 진영과 브라운 재무부 장관 진영과의 사이에서, 자존심 싸움보다는, 그녀가 가진 논리적인 판단력과 여성특유의 부드러운 포섭력으로 원만한 교두보 역할을 한 것으로 그 역량을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교육부 장관으로까지 ‘파격적인 승진’을 한 것에 대해 납득할 만한 배경 설명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한 노동당 베테랑 여성의원에 의하면 “그 자리가 여자 의원이어야만 된다는 자리라면, 야당시절에서부터 우리당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여성 의원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교육부 장관이라니, 그 사람이 노동당을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냐? 마치 면상을 얻어맞아 앞 이빨이 내려앉은 느낌” (The Times)이라고 질투 섞인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교육부 장관으로서 그녀의 포부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없지만, 근간에 때 아닌 종교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그녀는 카톨릭 근본주의자 ‘Opus Dei (the work of God)"라는 계파의 멤버로서 세례를 받았으며, 그 계파가 가진 종교적 규율이 교육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빛을 받고 있다.
이 종파는 고전적인 캐톨릭 계시를 엄수 할 것을 목적으로 1928년에 조직되었다. 물론 종교의 신념 그 자체가 어떠하든 문제될 것은 없으나, 이 종파가 스페인의 프랑코 총통의 독재를 합리화하는데 기여를 했고, 신자를 정계에 투입하여 국가정책을 통해 종교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던 과거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일부 영국인들은 켈리씨와 그 종파간의 관계를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반영이 될 경우, 아직까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학교도 존재하는 영국의 상황에서 교육과정에 ‘진화론’과 ‘창조론’의 혼선이 생길 수 있으며, 특히 민감한 사안으로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청소년의 성교육부문, 낙태나 불임, 이혼, 동성애 등의 문제에도 영향력이 나타날 수 있다.
켈리씨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이라도 하듯이 “내가 이 자리에 온 것은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정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종교는 내 개인적인 문제”(BBC)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과거 재경부 차관보 시절, 블레어 수상이 제안한 ‘생명유전공학 스템 연구비 지원’ 에 반대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그 의사표시가 그녀의 종교적인 신념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변수의 논리적 분석에 의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학교 기강확립을 위한 전쟁’을 선포 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즉, 학교기강을 흐트린 학생은 일벌백계 처벌주의(zero tolerance)로 다스린다는 내용이다.
한 두 명의 학생에 의해서 수업분위기가 망가지는 교사들은 대체적으로 환영을 표시하고 있지만. 이러한 학생을 처벌해야 하는 학교운영위원회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가령 필자가 학교운영위원회로 소속된 학교의 경우, 한 아이가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3일간의 정학처분을 결정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통지서를 우편으로 발송을 했지만 학부모로부터 회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교장이 그 통지서를 들고 그 아이의 집에 찾아 갔지만 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두 번째 교장의 근무시간 외, 저녁에 찾아가서 그 통지서를 전달하고 정학사유를 설명했다.
그 아동의 집안은 이혼한 가정으로 홀어머니는 낮에 직장을 다니고 있었으며, 그 어머니는 이미 그 아이를 통제 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었다. 정학을 당한 3일 동안 그 아이는 혼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정학이라는 처벌이 교육적 행위로서 타당했는가 하는 학운위 내에서 또 한 번의 심각한 토론이 있었다.
일벌백계도 좋지만, 벌이란 사람이 벌을 감당 할 능력이 있을 때 그 효력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벌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벌은 단순한 ‘가혹행위’ 에 지나지 않으며, 어떠한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필자가 지난해 10월 방문한 런던 동남부 그린니치지구 퇴학자 수용학교 학교장의 말에 따르면, 2003년 졸업생, 총 11명의 일 년 뒤 행선지 조사에서, 7명은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었고, 두 명은 약물 중독으로 병원 수감 치료중이였으며, 두 명은 자살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복귀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연간 수 천 만원의 수업료를 내는 사립학교와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캐톨릭 교리에 따라 가족계획을 거부하고 4명의 자녀를 두고, 36세 약관의 나이에 교육부 장관에까지 파격적인 엘리트코스를 거친 그녀가 사회의 최저변 밑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교육부 장관으로서 어떻게 보살필지는 더 두고 봐야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