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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42년간 고인돌과 사랑에 빠진 우장문 선생님

K-문화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 덕분, 고인돌 잘 보존·홍보해 후손에게 물려줘야

 

전 수원 숙지고 우장문(사진) 교사(63). 필자와는 이웃 학교에서 근무했다. 그때 고인돌 박사라고 불렀다. 그는 1990년부터 지금까지 35년간 수원에 살고 있으니 본인 스스로 수원사람이라고 말한다. 수원에서의 교직 생활을 보면 수일여중에서 3년, 수원여고에서 7년, 숙지고에서 6년. 총 16년을 수원시 관내 역사 교사로 근무했다.

 

우 교사는 지금도 고인돌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고인돌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하다. 그래서인가 집 주변이나 근무지를 옮길 적마다 새로운 고인돌을 찾아다닌다. 인근 지역뿐 아니라 우리나라, 만주, 일본, 인도네시아, 영국에 있는 수많은 고인돌을 만났다. 고인돌과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고인돌과 깊은 사랑에 빠지게 하였다.

 

그와 고인돌과의 첫 인연은 대학 때 고고학 전공의 이융조 교수를 만난 것이 고인돌과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되었다. 1983년에 고인돌 발굴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이후로 강제(?)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했고, 수시로 연락해 고인돌 연구를 계속하라고 재촉했다. 덕분에 대학에서 10여 년간 강의도 했지만, 중등 역사 교사로서 바쁜 중에도 고인돌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고인돌은 ‘고인+돌’이다. ‘고여놓은 돌’이라는 뜻. 한자로는 지석묘(支石墓). 고인돌의 99% 정도는 무덤이다. 주로 무덤 용도이기에 껴묻거리로 토기, 청동기, 돌칼,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작게는 몇 톤에서 수십, 수백 톤에 이르는 거대한 고인돌에서 당시의 뛰어난 건축술은 물론 동원된 사람들의 수를 계산하여 주변에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수원 화성의 견고한 성벽에서 고인돌을 연계한다. 커다란 돌의 빈틈을 메우면서 쌓아 올라간 성벽에서 그랭이 기법을 찾았다. 이 그랭이 기법은 신석기 시대나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에서도 사용된 것. 축성 방법이 수천 년 전부터 사용했던 기법이라는 것. 성을 튼튼히 쌓아서 외침을 막아내는 원천이 되었던 건축 기술을 고인돌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고인돌에 관한 연구는 문헌자료가 없기에 고고학자는 물론 사회학자, 건축 전문가, 암석 전문가, 생물학자 등이 총동원되어 함께하는 융합학문이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경기도 고인돌이다. 그는 경기도 고인돌의 특징으로 첫째, 경기 서해안 주변, 한강, 임진강과 그 가지천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둘째, 한강 이북에는 탁자식 고인돌이 많으나 한강 이남에는 탁자식 고인돌이 많이 분포하지 않는다. 셋째, 탁자식 고인돌의 북부지방과 바둑판식 고인돌의 남부 지방의 중간 지대라는 점. 수원지역의 특징은 탁자식에서 바둑판식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수원 팔달산 고인돌은 굄돌의 높이가 매우 낮다는 점에서 탁자식에서 바둑판식으로 변화하는 모습의 일면이다.

 

 

그에게 수원에 있는 고인돌 위치를 물었다. 수원시민회관 옆 팔달산의 산길로 수원 화성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위치한 팔달산 고인돌, 수원 금곡동 택지개발로 발굴된 후 수원박물관 야외로 옮겨놓은 금곡동 고인돌, 또 광교 신도시 개발로 옮겨진 고인돌이 수원광교박물관 정원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팔달산 고인돌은 4기가 떼를 지어 있고 간돌검이 출토되었으며, 이 중 1기는 무덤방이 노출되어 있다.

 

고인돌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무엇일까? 그는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되고, K-문화가 세계문화가 된 것은 우리 선조들이 지혜 덕분이다. 그 대표적인 상징물이 고인돌. 수천 년이나 된 건축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산은 고인돌이 거의 유일하다. 고인돌은 크고 무거운 덮개돌을 지탱하면서 수천 년을 버텨냈다. 수천 년을 버텨낼 기술을 우리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딱딱한 돌을 잘 다루고, 수천 년 동안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고인돌을 만들 수 있는 민족이기에 우리는 지금 세계 속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고인돌에 얽힌 에피소드. 1983년 충북 제천 황석리 고인돌 발굴 중에 완전한 사람 뼈와 곡옥과 대롱옥이 발견되었다. 사람 뼈와 옥이 발견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서 매우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 마침 이곳 담당이라 비바람 부는 밤에 1m 옆에 텐트를 치고 혼자 있는데 사람 뼈가 자꾸 텐트 안으로 기어서 들어올 것 같은 생각에 잠도 못 자고 무서워 벌벌 떨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우 박사는 고인돌 이해 작업 프로젝트로 ‘K-고인돌’ 시리즈를 시작했다. 2023년 중부지역 고인돌을 중심으로 첫 번째 책을 발간했다. 앞으로는 전라도, 경상도, 북한, 만주, 일본 고인돌에 대해서도 차례로 만들어갈 예정이다. 나아가 남북한, 만주, 일본, 인도네시아 고인돌을 어느 정도 연구를 했기에 이를 바탕으로 인도, 유럽으로 이어지는 고인돌의 연결 고리를 연구하고 싶다고 밝힌다. 이를 통해 수천 년 전 유럽과 우리나라의 문화 전파 경로를 연구하고 싶다는 것이다.

 

‘고인돌이 인생의 동반자’라는 그가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분포하는 곳이 한반도. 4만 여기의 고인돌이 오히려 홀대받고 있다. 약 2000~4000년 전에 만든 건축물인 고인돌, 얼마나 귀중한 문화재인가?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알려주는 고인돌이 알게 모르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지자체에서 앞장서서 우리의 최고 문화재 중의 하나인 고인돌을 잘 보존하고 홍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줄 의무가 바로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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