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 곳곳을 움직인다. 자동차를 움직이고,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며, 배터리에 에너지를 저장하고, 인공지능(AI)이 작동하도록 하는 데도 전기가 필요하다. 그 전기를 필요한 형태로 바꾸고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기술이 바로 전력전자공학이다.
평생 전력전자 분야를 연구하며 우리나라 전기·에너지 산업의 발전에 힘을 보탠 원충연 전 성균관대 문행석좌교수. 오랜 세월 대학 강단과 연구실에서 후학을 길러온 그는 이제 과천 지역사회에서도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며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원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연구 인생과 교육철학, 그리고 은퇴 이후의 삶을 들여다봤다.
원 교수에게 전력전자공학은 단순한 전공이 아니다. 그는 전기공학이 전기를 만들고 보내고 사용하는 기술이라면, 전력전자공학은 전기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압과 전류로 바꾸고 원하는 대로 조절하는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직류전력을 교류로 변환해 모터를 구동하는 인버터, 태양광 발전에서 생산된 직류전력을 교류전력으로 변환하는 장치, 태양광과 풍력의 불규칙한 출력을 안정화하는 ESS 등 우리 생활과 산업 곳곳에 전력전자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원 교수는 특히 태양광발전용 전력변환장치(PCS) 개발과 직류배전 연구에 오랫동안 힘을 쏟았다. 2008년에는 삼성전기의 지원을 받아 성균관대에 에너지파워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핵심기술 개발에 나섰다. 기업과 대학이 함께 연구하고, 학생들에게는 연구와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산학협력 모델을 통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재를 길러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원 교수의 연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교육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원칙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저학년에게는 수학·물리·회로이론·전자기학 등 기초를 충실히 익히도록 하고, 고학년이 되면 취업과 대학원 진학 등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고민하도록 돕는다. 또한 기업과 연구소를 직접 찾아가 강의실에서 배운 지식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경험하도록 했다.
“교수가 모든 답을 알려주는 교육보다 학생이 질문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러한 교육철학은 그의 연구실을 단순히 논문을 생산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래의 기술자와 연구자를 성장시키는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원 교수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성실함’이다. 그에게 성실함은 단순히 하루하루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학생 한 사람을 소홀히 하지 않고, 연구 한 편에도 정성을 다하며,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 그는 이것이 진정한 성실함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삶의 결과일까. 원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32년 8개월 동안 강의했고, 문행석좌교수로서의 기간까지 합쳐 오랜 세월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 과정에서 석사 223명, 박사 76명을 배출했으며, 제자들은 대학 교수와 대기업·중견기업·벤처기업 대표,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다. 그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로 ‘제자들을 길러낸 것’을 꼽는 이유다.
원 교수의 전기공학 인생에는 특별한 출발점이 있다. 그의 아버지도 전기공학과 교수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대학원생들과 함께 늦은 시간까지 논문을 지도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전기공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연구실에서 실험가운을 입고 학생들과 연구에 몰두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원 교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아버지의 연구를 그대로 이어가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가 제자들에게 강조한 것은 학생을 자신의 연구방향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현재 수준에서 출발해 각자가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었다. 학생마다 출발점은 다르지만 관심과 격려, 수준에 맞는 지도가 이루어지면 누구나 자신의 강점을 살리고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뒤 원 교수의 관심은 지역사회로도 넓어졌다. 과천에 살면서 중앙동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쌓은 문제 해결 능력과 전문지식, 다양한 의견을 듣고 조정해 온 경험을 지역사회에 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주민자치위원 활동 역시 새로운 직책을 맡는다는 의미보다 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을 지역사회에 되돌려주는 봉사의 기회로 받아들인다.
청소년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활동도 이어갔다. 과천시 마을공동체사업을 통해 과천 관내 초·중학교에서 전기자동차 강연을 진행하고, 학생들이 직접 전기자동차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연구실에서 미래의 기술자를 키웠던 교수가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어린 세대에게 과학의 꿈을 심어주고 있는 셈이다.
원 교수의 삶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부분은 나눔이다. 그는 성균관대에 기부하면서 ‘소액다수의 기부문화’를 강조했다.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실험·실습시설과 연구공간을 확충하는 일은 대학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졸업생과 동문들이 각자의 형편에 맞게 작은 금액이라도 함께한다면 그 정성이 모여 후배들의 교육환경을 바꾸고 미래 인재를 키우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가 말하는 기부는 단순한 금전적 나눔이 아니다. “내가 받은 교육을 후배에게 다시 돌려주는 선순환.” 그것이 원 교수가 생각하는 교육을 위한 나눔이다.
은퇴를 앞두고 원 교수는 성균관대 이준신 교수에게 수필집 원고를 부탁했다. 이 교수는 흔쾌히 승낙하면서 붓글씨로 ‘전심치지(專心致志)’라는 글을 건넸다. ‘마음을 오직 한 곳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수십 년 동안 교육과 연구, 봉사에 전념해온 원 교수의 삶을 한마디로 압축한 표현이기도 하다.
물론 지나온 세월에 아쉬움도 있다. 교육과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가까운 사람과 차 한잔 나누는 여유, 여행하며 계절을 즐기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나온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학생과 제자들의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이 큰 감사와 보람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람과의 관계, 가족과의 시간, 자연과 여행, 마음의 여유도 소중하게 가꾸고 싶다고 말한다.
원 교수에게 미래의 전기산업은 더욱 흥미롭다.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고, 전력전자 기술로 변환하며, ESS와 전기자동차에 저장하고, AI가 전력 수요와 공급을 예측·제어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존 전력망이 결합해 지능형전력망으로 전환되면서 전기는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산되고 저장되고 소비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가 전기공학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여러분이 배우는 전기는 미래 산업을 움직이는 핵심기술입니다.” AI, 전기자동차, 신재생에너지, ESS, 지능형 전력망 등 미래산업의 중심에 전기공학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전공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며 미래사회를 만들어가는 주역으로 성장하기를 당부했다.
원충연 교수의 삶은 한 분야의 기술을 깊이 연구한 학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기술을 연구하고, 학생을 가르치고, 제자를 키우고, 받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는 삶. 전력전자라는 한 길을 오래 걸어온 그는 이제 연구실 밖에서 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과천의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어린이와 주민을 만나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후배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한다. 결국 그가 밝히고 있는 것은 사람의 미래를 향한 ‘희망의 불빛’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