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데도 출근한 경험이 있는 초등교사가 10명 중 8명에 달하는 가운데 교사의 건강 문제를 개인의 스트레스나 회복력 차원이 아닌 직업적 위험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후 상담과 치료에 머물지 않고 노동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예방 중심의 안전보건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백승아 의원(더불어민주당)과 강경숙 의원(조국혁신당)은 초등교사노동조합과 함께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에듀웰센터에서 ‘초등교사에게도 직업병이 있을까? 초등교사의 노동특수성과 직무질환 실태, 제도적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초등교사의 직업 특성과 직무질환 실태를 진단하고 예방부터 치료·회복까지 이어지는 제도 개선 방안이 논의됐다.
이날 공개된 ‘초등교사의 노동 특수성과 직업병 연구’에 따르면 조사 참여자의 78.8%가 아픈데도 출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우울 위험군은 38.8%,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위험군은 47.8%로 조사됐다. 개인적 특성을 보정한 뒤에도 폭력과 감정노동, 높은 노동강도는 우울 증상 위험을 유의미하게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발제를 맡은 이서영 서울대사범대학부설초 교사는 교사의 건강 문제를 사후 치료가 아닌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는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학교 현장에서 위험이 발생하기 전에 관리하고 질환 발생 시에는 교사가 충분히 치료·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교원 안전보건 관리체계 법제화와 함께 폭력과 악성 민원이 교사 개인에게 직접 도달하지 않도록 기관 중심의 대응구조를 마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교육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업무를 정비하는 등 교사의 직무 경계를 재설정하고 병가·휴직 등에 따른 대체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도 과제로 제시했다.
이진우 한일병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초등교사의 높은 노동강도와 휴식 부족, 폭력 노출, 감정노동 등이 건강을 위협하는 직업적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아파도 일을 계속하는 ‘프리젠티즘’이 높은 수준으로 나타난 만큼 휴가·휴직 제도를 두는 데 그치지 않고 교사가 실제로 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신체질환 역시 유병률은 높은 반면 치료율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교사가 질환을 겪은 뒤 개인적으로 치료하도록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직업적 노출요인을 줄이고 질환을 조기에 발견·개입하는 예방체계로 전환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토론에서는 학교가 담당하는 역할이 늘어날 때마다 이를 교사의 업무로 더해온 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수업과 생활지도에 정서지원, 안전관리, 행정, 학부모 소통까지 한 사람의 하루에 집중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 필요한 일이라는 것과 그 일이 교사의 일이라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라는 지적과 함께 새로운 업무가 생길 때 반드시 교사가 담당해야 하는지, 다른 전문인력이나 기관이 맡는 것이 적절한지를 따져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필요한 업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업무 성격에 따라 담당 주체를 다시 정하는 방식이다.
교과전담과 대체인력, 학생지원인력, 행정지원 확대도 단순히 인력을 늘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교과전담 확대로 수업 준비시간이 얼마나 확보되는지, 대체인력 확충으로 아픈 교사가 실제 업무를 멈추고 쉴 수 있는지, 행정지원으로 교사의 행정업무 시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등을 정책 효과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직무질환 발생 이후의 지원체계도 과제로 꼽혔다. 2020~2024년 교육직 공무원의 공무상 질병 요양 승인 936건 가운데 정신질환은 848건으로 90.6%를 차지했다. 직무 관련 질환에 대한 공무상 재해 인정과 함께 요양·회복지원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백 의원은 “초등교사의 정신건강 문제를 단순 개인의 적응이나 회복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노동환경에서 비롯되는 구조적 문제이자 ‘직업병’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오늘 말씀해주신 진단과 제언을 꼼꼼히 살펴 차후 입법과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 의원도 “감정노동과 무분별한 악성 민원, 과도한 책임과 업무 스트레스 등 교사를 병들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환경에 있다”며 “교사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입법과 예산, 제도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