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11학년(고등학교 2학년)인 필자의 큰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친 후 3학년 과정을 껑충 뛰어넘어 이듬해 바로 4학년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년 말 끄트머리 한 두 달 정도 '맛 뵈기'로 3학년 생활을 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우리 애가 또래보다 학습능력이 탁월해서 소위 '월반'을 한 것으로 짐작하면 오해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야 할 아이가 느닷없이 4학년으로 올라가게 된 이유는 순전히 주마다 다른 이 나라의 교육시스템 탓이기 때문이다.
호주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 기준이 주마다 다르다. 일례로 시드니가 속해 있는 뉴 사우스 웨일즈 주는 아동들의 출생년도 및 태어난 달(7월을 기준)을 적용하여 초등학교 입학을 허용하는 반면, 퀸스랜드 주는 월별 출생과는 무관하게 당해년도에 해당하는 학생에게 일률적으로 입학자격을 부여한다.
우리 큰 애도 시드니에서 이곳 퀸스랜드 주 타운스빌로 이사를 오는 바람에 달라진 입학연령기준에 의해 전학과 동시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간 후 두 달 남은 그해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이듬해 곧바로 4학년이 된 것이다. 주를 바꿔 전학할 경우 흔히 발생하는 이같은 혼란은 주마다 제각각인 이 나라의 초·중·고 교육시스템에서 야기된 결과이다.
8개 주로 구성된 호주는 주마다 서로 다른 학제와 교육과정, 성적관리 및 학력평가시스템을 갖고 있다. 교육체계 및 학제의 차이로는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경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각각 6년제인데 반해 퀸스랜드 주는 초등학교 7년, 중고등학교 5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같은 초등학교 졸업반일 경우에도 어느 주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학력차가 날 수 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연령이 같다 할지라도 전국적으로 동일한 기준의 학력평가를 할 수 없게 된다. 이같은 현상은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따라서 대학입시도 주마다 다른 평가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식으로 치뤄지는 대학입학시험은 시드니가 있는 뉴사우스 웨일즈 주나 빅토리아 주에만 있을 뿐, 퀸스랜드 주 등 일부 타주에는 별도의 입학 시험없이 11, 12학년(고등학교 2,3학년)때의 내신성적으로만 평가한다. 말하자면 한 나라에 두 가지 대학입학제도가 공존하는 셈인데, 이처럼 각기 다른 평가방법으로 성적을 얻은 후에는 전국 어디나 원하는 대학에 응시할 수 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일률적으로 치뤄지는 입학시험을 택할 지, 아니면 2년간의 내신성적을 다지는 쪽이 유리한 선택인지는 순전히 본인과 가족들의 판단에 달려있다. 한 나라의 고교 졸업생들이 사는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이 우리로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이 나라의 현실은 그러하다.
연방 교육부는 이같은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혼란을 없애기 위해 최근 8개주의 8개 개별 교육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개혁안을 검토한 바 있다. 이 개혁안은 전국적으로 초등학교 입학연령과 학제를 통일하고 대입학력고사 등 국가관리 학력평가시험을 동시에 실시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개혁안에 대해 각 주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전국적으로 커리큘럼이 같아질 경우 역사와 지리 등 주의 특성을 반영하는 과목에 대한 수업내용이 부실해 질 것이라는 등 주 교육 관련자들의 부정적인 견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주마다 독특한 교육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언뜻 불합리하게도 느껴지지만, 한 나라에서 시차마저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시스템의 공존은 달리 생각하면 당연한 듯 여겨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