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사회에서의 3월의 의미는 자못 남다른 바 없지 않다. 기나긴 겨울방학을 보내고 나서 맞은 2월, 여러 가지 학교행사로 해서 어수선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다시 3월이 온다고 그런다. 지나간 2월이 떠나보냄의 달이요 정리의 달이라면 3월은 맞아들임의 달이요 새 출발의 달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졸업식이다 종업식이다 그래서 들떠 있었고 교원들 또한 인사이동으로 해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2월에서 3월 사이의 그 스산하고 애잔한 정서를 무엇으로 표현해야만 좋을까. 그만큼 떠나보냄과 새로운 만남을 연습했으면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해마다 2월이 오고 또 3월이 오면 가슴은 여전히 보랏빛으로 아리고 눈빛은 또 여전히 풀빛으로 출렁인다.
돌이켜 보면 지난간 몇 해 동안 이 땅의 모든 교원들은 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은 수모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가. 그러나 언제까지고 우리가 그렇게 지나간 일에만 발묶여 서성거리거나 한숨을 내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겐 우리가 사랑해서 마땅한 아이들이 있다. 교실이 있고 운동장이 있다. 교육은 여전히 인간이 할 수 있는 사업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깨끗하고 꽃다운 사업인 것이다.
더구나 머잖아 3월이 다시 온다 하지 않는가. 달력으로 쳐서 1년의 시작은 1월 1일이지만 학교의 입장으로 봐서 1년의 시작은 3월 1일이다. 우리가 사랑해서 마땅한 우리의 아이들은 그 3월 1일을 저들의 집에서 보내고 3월 2일이 되면 새 가방에 새로운 책과 새로운 공책을 마련해 가지고 웃는 얼굴로 교문을 들어설 것이다. 비록 새 운동화를 마련하지 못한 아이들이라도 엄마가 빨아준 깨끗한 운동화로 갈아 신고서 오리라.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우리의 아이들. 저들 얼굴 가득 물리는 태양 같은 미소. 3월의 아이들은 더욱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들이고 더욱 빛나는 태양의 미소를 닮은 아이들이다. 왜인가? 저들이야말로 어제의 아이들이 아니고 바로 오늘, 바로 지금, 여기에서 태어난 새 생명들이기 때문이다. 하나씩 계단을 올라간 아이들. 어제보다 의젓해지고 당당해진 모습. 그들은 모두가 오늘의 승리자들인 것이다.
저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느껴야 할 것인가. 아이들은 우리에게 새로움이 무엇이고 새로운 시작이 무엇인가 배우게 한다. 아이들은 또 새로움과 새로운 시작의 떨림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들은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들의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아이들은 인간의 꽃이요 지상의 별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노래하는 악기요 꿈꾸는 보석이다. 어른들의 세계가 하수구라면 아이들의 세계는 상수도요, 아이들은 또 그 맑은 물이다.
그 아이들이 3월이면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선생님들을 만나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모든 것은 새롭고 서툴고 낯설기만 할 것이다. 이 새로움과 서툴음 그것이 생명의 속성이요 본질이다. 어른들은 바로 또 이러한 점을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충청도 계룡산 기슭, 산골에 위치한 조그만 초등학교이다. 그러나 우리학교에도 3월이 되면 몇 명의 신입생들이 들어 올 것이다. 어제 그제까지만 해도 유치원 교실에서 천국의 나날을 누리던 녀석들. 손에서 과자냄새가 나고 옷자락에서 우유 냄새가 나는 녀석들. 그들은 선생님으로부터 앞으로나란히를 배울 것이요, 반듯하게 줄서는 법을 배울 것이요, 글씨 쓰기와 셈하기를 배울 것이다.
신입생 아이들의 비뚤비뚤한 글씨 쓰기와 줄서기는 우리에게 깨끗한 웃음과 희망을 선사해준다. 이 신입생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재학생 아이들도 한 학년씩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요 졸업생들도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때로 우리는 그 동안 세상을 향해,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절망하기도 했고 야속한 심정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아이들은 사랑스럽고 새롭고 반짝인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들의 나날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가치롭고 훌륭한 일임을 안다.
이제 세상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지 말자. 어디까지나 나는 내가 아니겠는가. 어렵게 어렵게 우리 곁으로 찾아온 3월. 따스한 손을 내밀어 악수라도 청해볼 일이다. 그래도 3월은 온다. 올해도 이 말은 우리에게 희망의 깃발이 되어 우리를 풀내음 가득한 들판으로 안내해줄 것이다. <충남 왕흥초등교 교장 나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