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학생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부식되고 균열 생긴 벽은 언제 떨어져 무너질지 모르고 천정에서는 비까지 샌다. 유독성 페인트, 접착제로 ‘화장한’ 교실은 아토피나 두통을 유발하고, 작은 책걸상에 종일 몸을 구겨야 하는 아이들의 허리는 조금씩 휘고 있다.
“돈이 없다”는 교육청 담당자들의 말을 백번 이해해도 학교는 이미 ‘재난위험시설’이다. 2001년 시작된 7.20교육여건개선사업이 올해로 끝나지만 돈보다는 이런 문제에 관심이 더 없는 교육당국에게 ‘생명’과 ‘안전’은 사치스런 주제다.
▲붕괴 위험 학교 건물=현재 학교 건물 중 균열이나 변형이 허용치를 초과하거나 붕괴가 우려되는 재난위험시설(E․D급)은 전국 65개 학교에 68개다. 문제는 이 중 계속 사용하는 시설이 49개이며 그 중 29개 시설은 최근 3년간 정밀안전진단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전불감증도 이 정도면 도가 넘어선다.
경기 K고는 작년에는 D급, 올해는 교실 외벽의 균열이 심하게 부식돼 곳곳이 떨어져 내려 ‘즉시 사용금지’ 결정을 내려야 할 E급을 받았지만 여전히 수업을 강행하고 있다. “언제 시멘트 덩어리가 머리 위로 떨어질지 겁난다”는 학생들의 불만에도 보수 계획은 없다. 뒤늦게 올해 BTL 신청을 했지만 탈락되면서 내년에도 위태로운 수업은 불가피하다.
전남 A초도 지난해 2층짜리 교사동이 E급 판정을 받았지만 예산상의 이유로 2층만 개축하고 1층은 그대로 쓰는 상식 밖의 일까지 당했다. 이 학교 교장은 “돈이 부족하다는 게 교육청의 설명”이라고 토로했다. 준공 38년째를 맞는 서울 B초는 지난해 D급을 받아 현재도 건물 외벽 균열과 풍화가 계속 진행돼 낙석 위험까지 있지만 아직도 개축, 보수 없이 수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재난위험시설은 지난해 57개에서 올해 68개로 되레 11개가 늘었다. 더욱이 이들 시설 중 정밀안전진단을 받은 것은 38개 시설뿐이고 나머지는 담당공무원의 육안 진단에 의존한 결과라 C급 이상의 시설도 내부 노후화 정도 등 그 위험성을 알 길이 없다.
올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부각시킨 한나라당 진수희(교육위) 의원은 “학교신축 등 타 환경개선사업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안전이 투자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것은 큰 문제”라며 “더욱이 BTL 사업이 50억원 미만 공사를 심사 과정에서 배제하고 있어 오히려 노후시설 개선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로쿠르스테스의 책걸상=학생들의 체격과 신장은 날로 커지는데 아직도 우리 학교는 10년 전에 쓰던, 쇠파이프에 황토색 합판을 댄 3, 4만원대 고정식 책걸상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최근 교체되는 것들도 겨우 높이만 커진 것이어서 아이들은 몸에 맞지 않는 책걸상에 몸을 구겨 맞추느라 척추가 휘는 질병을 얻는다.
이런 이유들로 현재 전국의 학교가 교체를 희망하는 책걸상은 약 136만 5000여조. 전체 책걸상의 22.5%에 달한다. 이 중 서울, 경북, 울산, 제주는 절반이 교체 대상 책걸상이다. 그러나 16개 시도교육청은 올해 42만 5000여조만 교체하기로 하고, 예산도 205억원을 배정하는데 그쳤다. 1조당 단가가 4만 8000원인 셈.
현재 중소기업체가 생산하는 높낮이 조절용 책걸상 1조가 보통 5, 6만원, 허리 보호기능까지 있는 대기업 제품이 10만원 이상이니까 교육청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6만원대 예산을 배정한 일부 시도도 학교가 더 많은 책걸상을 교체하기 위해 고정식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 높낮이 조절 기능 책걸상을 갖춘 학교는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초중고생에 대한 등심대 조사 결과, 척추이상자가 지난해 3만 3578명에 달했다. 초등생은 2003년 2945명에서 2004년 4946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최근 국회에서 학교책걸상 전시회를 열었던 한나라당 김영숙(교육위) 의원은 “책걸상은 학생들의 성장과 건강, 그리고 학습력에 큰 영향을 끼치는 기본요소인데도 아직도 책 올려놓는 도구로만 인식되고 있다”며 “가장 오래 가장 불편한 자세로 앉는 곳이 바로 교실 책걸상이라는 오명을 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교육청 이연수 시설과장은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하면 최소 10만원 이상의 제품으로 교체해야 하지만 예산이 없다”며 “이 때문에 일부 학교는 발전기금으로 책걸상을 교체하고 일부 부유지역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책걸상을 사주고 학년이 올라갈 때도 들고가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 의회는 2003년 중학교 책걸상 교체를 위해 68억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가장 성장이 급격한 중학생에게 높낮이 조절용 책걸상을 사 줘 허리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시교육청은 이 예산으로 1조당 10만원을 일부 중학교에 배정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지원은 이듬해부터 끊긴 상태다.
▲암 유발하는 교실 공기=5일 열린 한국실내환경학회 학술대회에서 고려대 보건과학연구소 손종렬 교수팀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9개월 동안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 55곳의 교실, 컴퓨터실, 과학실의 공기의 질을 각각 세 차례 조사한 결과, 총휘발성유기화합물 31곳, 부유세균 29곳, 포름알데히드 15곳, 이산화탄소 11곳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하대 산업의학과 등이 올 6, 7월 서울, 대전, 대구, 포항지역 31개 초등교에서 톨루엔 등 10종의 휘발성유기화합물(TVOC)을 측정한 결과에서도 10개 학교가 환경부 기준치(400㎍/㎥)보다 두세 배에 달했다. 준공 1년 미만의 학교는 모두 기준치를 넘었다.
신축학교의 경우, 톨루엔만으로 이미 TVOC 기준치를 넘겼다. 톨루엔은 피부염, 기관지염, 두통, 현기증 등을 일으키며 중독되면 중추신경계 장애를 유발한다.
이들 학교 초등생 1043명에 대한 설문 결과, 최근 1년 동안 알레르기성 비염과 알레르기성 피부염(아토피)을 앓은 학생도 33.4%, 22.0%에 달했다. 연구팀은 “벤젠 노출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알레르기성비염 발생이 3배 이상 증가했고 스티렌에 대한 노출 농도가 높아지면서 천식도 증가했다”고 연관성을 설명했다. 평소 아토피 증세가 있던 서울 D초 2학년 L군은 새 교실로 옮기면서 피부가 온통 피딱지로 덮일 만큼 증세가 심해졌다. 참다 못한 부모가 공기청정기를 대여해 설치해야 했다.
이번 조사를 의뢰한 민노당 최순영(교육위) 의원은 “개별 휘발성유기화합물 별로 기준치를 정해 학교보건법에 명시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친환경 바닥재, 벽지, 페인트, 가구 등을 써야 하는데 문제는 역시 단가다. 환경부가 건설업체에 문의한 결과 ‘포름알데히드와 휘발성유기화합물 등의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려면 교실 평당 5, 6만원이 더 든다’는 답변을 들었다.
20평 교실마다 120만원이 더 드는 꼴인데, 교육청에 그럴 예산은 없다. 그래서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기준만 마련한다고 개선될 일이 아니라는 게 담당자들의 지적이다.
▲지하수 마시는 학교=2005년 현재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학교는 1770개교. 농어촌 학교가 많은 전남(371개교), 충남(351개교) 등 도 지역에 집중돼 있다. 문제는 지하수의 경우, 언제 수질이 나빠져 부적합 판정을 받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중금속 등을 함유해 부적합 판정 받을 때는 이미 아이들이 그 물을 한참 먹은 후다.
때문에 각 학교는 속히 상수도 인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재정난은 이 사업을 더디게 만든다. 1년간 상수도 인입 작업이 진행된 학교는 114개. 시도 당 연 7개 학교 정도다. 이 속도라면 향후 15년은 학생들이 지하수를 먹거나 정수기에 의존해야 한다.
충북 D초의 한 교사는 “우리 학교는 지하수를 먹다가 5년 전 부적합 판정을 받아 수도 설치를 요청했는데 번번이 예산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요즘 지하수에서는 방사능물질, 발암물질, 중금속 등이 검출된다는 점에서 부적합 판정 후에야 대책을 세우지 말고 조속히 상수도로 전환하거나 정수기 설치 작업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