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넷, 열 여섯 소녀가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나물캐러 갔다오다가' 끌려 나섰던 그 길은 여성으로, 한 인간으로 모멸과 절망의 인생을 살게 되는 첫 걸음이었다. 변영주 감독의 '숨결'. -서울아트선재센터(02-733-8945·4월27일까지), 부산시네마테크(051-742-5377·4월14일까지)- 이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3부작의 완결편이다. 전편이 ‘나눔의 집’이라는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공동체 안을 들여다 본 것이었다면 ‘숨결’은 악몽 같았던 기억의 원천으로 할머니들을 끌어내고 있다. 일본군에게 끌려갔던 그날, 생리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린 아이가 일본군들에게 능욕 당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할머니들은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러나 그 증언은 너무나 끔찍해 귀를 막고 싶을 정도다. 지금도 남자와 여자가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만 보면 “어이구, 저 미친 년!”하며 치를 떤다는 할머니, 성병으로 인해 청각장애자로 태어난 딸이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할머니... 그들은 이 땅에 돌아와서도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남편이 집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할머니들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죽음으로써 일생동안 안고 다녀야했던 당신들의 상처는 지워졌다. 하지만 당신들이 밝힌 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당신들의 과거와 우리들의 현재는 어떻게 서로 바라보고 있는지, 당신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시간과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같은지를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더이상 당 신들의 '숨결'이 바람소리 되어 이승을 맴돌지 않을 수 있도록... /서혜정 hjkara@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