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는 독재정권 하에서 압살되는 우리 교육을 살리기 위한 교육민주화가 모든 교사들의 지상목표였다. 이제는 더없이 자유를 구가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 교육은 또 다른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교육의 주체는 학생과 교사이지만 ‘전문직’은 교육의 버팀목이다. 장학사 등 전문직은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교육전문가들이다. 이 교육전문직이 지금 최대의 위기에 처해있다. 교육행정직은 교육전문직과 교육일반직으로 구분된다. 전문직은 현장교원 중 선발되어 장학 등 교육현장을 직접 담당하는 사람들이고 일반직은 교단경험 없이 교육의 일반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전문직이 교육행정의 주체가 되어야함은 불문가지인데 우리나라는 지금 주객이 전도되어 있다.
전체 교원대비 일반직의 수는 지극히 적은데도 교육부의 85% 이상을 일반직이 차지하고 있으며, 전국 16개 시·도 부교육감의 대부분을 일반직이 장악하고 있다. 시도교육청 내에서도 본청 과장급과 직속기관장의 절반 이상은 일반직이 점령하고 있다. 그나마 대부분의 전문직들은 폭주하는 행정업무 속에 본연의 장학업무는 돌아볼 겨를도 없다.
우리나라 각종 교육정책과 입시제도가 해마다 심한 몸살을 앓는데 이는 교육의 문외한이 탁상공론으로 교육을 주무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교단경험 없는 교육학 박사들이 실험적으로 교육정책을 운용하는 것과 일선교사들의 교육적 경험은 결코 비교될 수 없다. 그런데 이론만 알고 있는 현장을 모르는 ‘교육엘리트’들이 정책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직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반직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제도와 시스템을 운용하는 당사자들이다. 첫째는 교육위정자들의 책임이다. 국가최고통치권자와 교육부 수장, 시·도교육감들의 교육에 대한 마인드는 그대로 교육정책에 투영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희망을 보지 못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신과 취향이 교육정책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물론 위정자 입장에서는 뜻에 맞게 움직여주는 일반직들이 고맙고 ‘소신파 고집쟁이 선생’들은 마땅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감언만 찾는대서야 교육이 제대로 서겠는가.
둘째, 교원노조이다. 나도 한때 노조에 몸담았지만 오늘날의 교원노조는 초기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파워집단이 된지 오래이다. 같은 교육가족인 교장·교감이나 교육관료를 상대로는 끝없는 투쟁을 전개하면서, 보다 근원적 오류인 교육부 내 일반직 독점 현상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지 모르겠다. 셋째는 교사 자신이다. 추락하는 교육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교사들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왜 일반직처럼 노력하지 못하는가. 교육 당국자들에게 불평만 일삼는 존재가 아니라 진정한 교육의 전문가임을 왜 일깨워주지 못하는가.
끝으로 국민들이다. 교육의 중요성을 망각한 역대 위정자들의 책동에 휘둘려 교사들을 비난할 줄만 알았지 위로와 격려를 보내준 적이 있었는가. 원로교사들이 촌지나 밝히는 부도덕한 존재로 매도되어 교단을 떠날 때 어떠했는가.
진단이 내려진 만큼 처방도 간단하다. 교육은 교육전문가들에게 맡기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교육당사자들이 이기주의를 벗어나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지금처럼 교육부 수장이 “학교장을 아무나 할 수 있다”는 발상을 하는 한 미래는 암담하다. 아무리 변명을 해도 결국 교장으로 밀고 들어올 사람은 대학교수나 일반직이기 때문이다. 일선학교장을 초·중등교사 무경험자로 임명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교사들은 각성하고, 교원노조는 방향을 바로잡고, 위정자들은 교육본질을 직시하고, 국민들은 교육의 파수꾼이 될 때, 비로소 이 땅에는 진정한 교육이 실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