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의 다리를 감싸고 있기에 스타킹을, 그를 어디론가 데려가기에 구두를 질투한다. 잠시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소유욕은 사랑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그가 걷던 산책로를 걸으며 영원히 가슴 속에 그를 간직하는 여자. 그 사랑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아내의 연인이) 당신이었다니 다행이군" 이라고 말하는 남자. 그 남자야말로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을까. 영국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1904∼91)의 자전적 소설 '사랑의 종말' 을 영화화한 '애수'(The end of the affair)는 제목이 그렇듯 다분히 40년판 ‘애수’(Waterloo Bridge)’를 연상시킨다. 전쟁과 공습,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애절한 사랑이라는 비슷한 스토리 구조 때문이다. 2차 대전 중 공습의 혼란에 빠진 런던. 작가 모리스(랄프 파인즈)는 소설 소재를 찾으러 정부 고위 관료(스티븐 리아)가 주최한 파티에 갔다 그의 부인 사라(줄리안 무어)와 한 눈에 사랑에 빠진다. 무미건조한 삶에 지쳐있던 사라와 모리스는 뜨거운 사랑에 눈멀지만, 대공습이 있던 어느 날 모리스가 사고를 당하면서 운명의 엇갈림은 시작된다. "하느님, 그를 살려만 주신다면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겠습니다." 사라의 맹서에서 시작된 사랑의 단절. 그리고 그들이 각각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지낸 하나의 시간. 영화는 그 시간을 통해 인간이 사물의 한면 밖에 보지 못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하는지를 일깨운다. 사라는 왜 무심결에 한 혼자만의 약속을 그토록 굳게 지켰을까. 인간의 영원과 구원에의 욕망을 '사랑'으로 완성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신을 사랑하듯 인간도 보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고. 눈에서 멀어진다고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서혜정 hjkara@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