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한 20대 여성이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린 일이 있었다. 사건 직후, 이 여성의 사진과 신상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유포됐고 네티즌들로부터 집단 욕설과 비방의 대상이 됐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사이버 명예훼손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한 예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사이버 명예훼손, 음란물 유포 등 인터넷 이용 확대에 따른 부작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만 이를 예방하기 대한 교육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더욱 큰 위험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다음달부터 서울 개웅초, 신상중, 선린인터넷고를 대상으로 ‘사이버청정학교’를 운영한다. 직영학교로 선정된 이들 학교는 12월까지 정보통신윤리 강의를 비롯해 퀴즈대회, 수기 공모전 등 다양한 체험활동 프로그램에 대한 모든 인적·물적 예산을 지원받게 된다.
정통부와 윤리위원회, 매일경제는 3개 직영학교 외에 경북 대교초, 충북 청천중, 전죽 익산고 등 시·도교육청의 추천을 받은 전국 57개 학교도 사이버청정 자율학교로 선정했다. 전국 57개의 초·중·고도 사이버청정학교 자율학교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자율학교에는 별도의 예산지원은 없지만 각종 프로그램과 유인물 등 콘텐츠는 제공되기 때문에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사이버청정학교는 이미 작년 9월부터 한 학기 동안 서울 공항중학교, 용인 신촌중학교에서 시범 운영된 바 있다. 한 학기라서 다소 짧은 감은 있었지만 학교 측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교육프로그램을 짜고 정규 교과시간 내에도 수업을 배정했다. 전교생이 한꺼번에 듣는 대규모 형식이 아니라 1,2개 학급을 대상으로 교육하기 때문에 효과도 훨씬 뛰어났다는 것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측의 설명이다.
청정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이 다루는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사이버 명예훼손은 오프라인상의 명예훼손보다 형량이 무겁다, 다른 사람이 쓴 비방글을 퍼나르는 것도 명예훼손죄가 적용된다’는 등 사이버 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과 인터넷상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언어훼손의 문제점, 주민등록번호 도용 등 개인정보 침해, 영화나 음악 불법공유 등 저작권 침해, 음란물을 유해정보신고센터에 신고하는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이 실시된다.
현재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확보하고 있는 강사진은 33명. 대부분 현직 교사로 이뤄져 있다. 강사들은 “아이들은 악의적인 글을 퍼나르는 일도 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적조차 없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알려주면 깜짝 놀라곤 한다”고 전했다.
시범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공항중 배은주 교사는 후기를 통해 “처음에는 수업시수 확보 등으로 걱정도 많았는데 되돌아보면 정말 운영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고, 용인 신촌중 이경민 학생도 “수업을 들은 후에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불건전 메시지가 올 때 화면을 캡처하고 신고하게 됐다”고 전했다.
사이버 청정학교의 또 한 가지 특징은 학부모 교육도 실시된다는 점이다. 시범학교에서도 음란물로부터 자녀를 지키는 방법 등에 대한 특강이 한 차례씩 열려 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음란물 차단, 게임중독 예방, 개인정보 보호, 건강한 채팅문화 등 자녀의 올바른 인터넷 이용을 지도할 수 있는 가정통신문도 4차례에 걸쳐 발송됐다.
청소년들은 딱딱한 강의를 금세 지루해하기 때문에 청정학교에서는 골든벨 퀴즈대회, 건전한 정보이용 프리젠테이션 경진대회, 수기공모전, 엽서공모전 등 다양한 행사와 인터넷 사용일지 쓰기, 인터넷 사용 시간표 만들기, 사이버명예시민으로 활동하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도 병행된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교육홍보팀 김순정 씨는 “시범학교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올해는 게임이나 창작활동을 늘려 학생들이 더욱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학교 현장을 나가보면 학교장이나 교사의 열의에 따라 청소년들의 사이버 윤리의식도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사이버 청정학교가 점점 확대돼 나가면 깨끗한 인터넷 문화가 정착되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