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새내기 교사 시절의 일이다.
어느날 오후, 글씨를 읽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하던 녀석이 내가 교장실에 결재를 맡으러 간 사이에 장난을 치다가 유리창을 깨뜨리고 말았다. 그 일이 아니라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해가 모자랄 판인데 유리창까지 깬 것에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아이를 의자 위에 올려 세우고 긴 회초리로 종아리를 몇 대 때렸다.
“오늘은 나머지 공부 그만하고 집으로 간다. 책보 잘 챙기도록 해. 그리고 오늘 배운 것 집에서 써 가지고 와. 알았어?”
“…….”
대답이 없다.
“빨리 집으로 가!”
교실 밖을 나갈 때 보니 아이의 종아리가 벌겋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미안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다.
교실 모퉁이를 돌아가는 녀석을 다시 불러서 교실로 들어오도록 했다. 그리고는 누런 찌그러진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고 종아리를 담그게 한 뒤 종아리를 주물러 주었다. 녀석은 의아한 듯 놀란 눈으로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미안하다. 화를 참지 못해서 너를 심하게 때렸구나.”
“선생님, 괜찮아요. 별로 안 아팠어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앞으로 우리 좀 더 열심히 잘해보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밖으로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때, 교실에 남루한 옷에 동냥자루를 등에 맨 남자가 들어와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 저는 철이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아 그러세요? 그런데 어쩐 일로….”
“선생님, 절 받으셔유.”
철이 아버지는 다짜고짜 교실 바닥에 큰절을 넙죽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겁결에 엎드려서 같이 절을 했다.
“우리 아이 이야기 들으니까 너무 마음씨도 착하시고 공부도 열심히 잘 가르쳐 주신다기에 선생님 막걸리 한잔 사 드리려고 왔구먼유. 저는 아랫동네 동냥 갔다가 오는 길이어유.”
선생님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흔쾌히 학교 옆 동네 막걸리 집으로 갔다. 그날의 막걸리 맛은 지금까지 먹어본 어떤 음식보다도 가장 값진 선물이며 촌지였다.
해마다 학교와 교사의 촌지 문제가 매스컴에 보도될 때마다 나는 항상 새내기 교사 때 받은 그 촌지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