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2010학년도부터 도입될 서울지역 후기 일반계 '고입추첨배정제도'는 거주지와 관계없이 본인이 원하는 학교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는 거주지가 있는 학군 내 고교에 근거리 원칙에 따라 추첨을 통해 배정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강북지역인 마포구에 살더라도 강남지역 명문 고교에 진학하고 싶으면 지원할 수 있게 된다.
동국대 박부권 교육행정학과 교수는 7일 '후기일반계고 학교선택권 방안탐색을 위한 제2차 공청회'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서울시 후기 일반계 고교 학교 선택권 확대 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0학년도부터 중학교 3학년생들은 일반계 고교에 먼저 지원한 후 추첨 배정받는 '선(先) 지원ㆍ후(後)추첨' 방식으로 고교에 진학한다.
이 보고서는 가장 효율적인 학교 선택권 확대 방안으로 단계별 학생 배정비율을 1단계 단일학교군에서 30%(중부학교군은 60%), 2단계 일반학교군에서 40%, 3단계 통합학군에서 30%로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단일학군은 서울 전체 고교, 중부학군은 도심 반경 5km 이내 학교와 용산구 소재 학교를 합친 37개교, 일반학군은 현행 11개 학군, 통합학군은 인접한 2개 학군을 묶는 개념이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박 교수가 제안한 방안을 놓고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와 교원 등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등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후 내년 2월까지 최종안을 만들고 2010학년도 이후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학군조정안' 논의 과정 = 학군조정이 논란거리로 떠오른 것은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작년 8월 국회에서 부동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답변을 하면서부터다.
당시 김 부총리는 국회 예결특위 전체회의에 출석, 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의 학군조정 검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도 학생들의 선택권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좀 넓혀주기 위한 방법으로 평준화지역에서 학생들에게 선(先)복수지원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나서 추첨 배정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이 부분을 우선 확대 시행하면서 학군을 조정하는 방법도 하나의 대안으로 서울시 교육감, 교육위원회와 함께 협의해 보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김 부총리는 하루 뒤인 24일에는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언급된 학군 조정 문제와 관련, 원칙적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밝히면서 발언의 수위를 낮췄다.
특히 같은 달 25일에는 학군조정 문제를 직접 관장하는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이 '검토하지도 않고 계획도 없다'고 말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공 교육감은 당시 "(현재 11개 학군을 통폐합하는) 학군광역화는 검토하지도 않았고 계획도 없다"며 "선 복수지원, 후 추첨고교 대상지역인 공동학군을 확대해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넓혀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어떻게 배정하나 = 박 교수는 서울지역 전체 중학교 3학년생인 11만3천명으로부터 실제처럼 원서접수를 받아 모의실험을 한 결과를 바탕으로 학군조정안을 내놓았다.
이 방안은 학생이 1단계에서 서울지역 전체 고교 중 희망학교 제1지망과 제2지망 등 2개교를 지원토록 하는 것이다.
제1지망 학교를 지원한 학생 가운데 총 정원 중 30%가 추첨 배정된다. 여기에서 총정원의 30%를 채우지 못한 학교는 제2지망 학교 지원자로 나머지를 충원한다.
예를 들어 강남지역 A고교는 총정원의 30%를 현재의 근거리 원칙이 아닌 무작위 추첨을 통해 신입생을 뽑게 된다.
제1단계에서 탈락한 학생들은 거주지 소속 학군의 희망 학교 2개교에 정원의 40% 범위에서 추첨 배정된다.
지원한 4개 학교에 모두 탈락한 학생들은 인접한 2개 학군을 묶은 통합학군 내에서 통학 거리 등을 고려해 추첨 배정한다. 이를테면 강남학군과 동작학군을 통합학군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방안은 강남학군 등 특정학군에 학생이 몰리지 않는 장점이 있는데다 학교간 경쟁을 야기시킴으로써 전체적인 교육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평균 통학 거리가 멀어지고 선호학교 인근 학부모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학교선택권 확대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과연 교육당국이 정책으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선호학교의 일정비율을 다른 지역 학생에게 배정하면 그만큼의 해당 학교 인근 거주 학생들이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로 통학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강남학군을 다른 강북지역 학생에게 개방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강남학군을 선택할 지 의문이다.
외국어고교 등 특목고 입시 지원경향을 보면 학생들이 집에서 통학시간이 1시간 이상 소요되는 외국어고교를 외면하고 집 근처에 있는 일반계 고교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역에 상관없이 선발할 수 있는 비율이 정원의 30%에 불과해 실제 학교 선택폭도 예상처럼 넓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교원단체 '반대' =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이런 연구용역결과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총 한재갑 대변인은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진정으로 넓히려면 이런 방식의 학군조정보다는 현행 고교 평준화정책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며 "이를테면 사립고교에 대해서는 학생선발권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대변인은 "이런 미봉책 같은 학군조정이 이뤄지면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선호학교와 비선호학교 구도가 고착될 뿐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에게 큰 혼란만 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교조 서울지부 이금천 정책실장도 "한마디로 서울시 교육청의 학군조정 연구용역안의 방향이 잘못됐다"며 "학교선택권이 어느 정도 보장된 현행 선 복수지원ㆍ후추첨 대상 학군내에서도 선호하는 학교에만 학생들이 몰리고 있는 반면 상당수 학교의 지원율은 낮아 학교간 양극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시교육청이 이런 형태의 학군조정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선호학교는 소수화되고 비선호학교는 다수화될 것"이라며 "학교선택권을 확대하려면 결국 모든 학교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열린우리당 정봉주(열린우리당) 의원도 "현재 교육선택권이 제대로 갖춰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학군조정을 통한 학교선택권의 확대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했다.
반면 교육위원회 주호영(한나라당) 의원은 "궁극적으로는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넓혀주고 학교도 학생선발권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며 "다소 미흡하지만 이번 방안은 학교선택권을 다소 확대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