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靑鶴洞) 가는 길은 그 어디쯤 열려있는 것일까. 왜 나는 지리산에 빠져버렸을까. 수많은 봉우리와 그 능선들을 왜 자꾸 오르려하는가. 깊은 내면, 이상향을 향한 원초적 그리움 때문일까. 이 불안과 혼돈의 시대에도 이상향은 존재하는 것일까. 그 커다란 지리산의 어디쯤에 이상향은 숨어있을까. 지리산에서 이상향을 찾으려했던 흔적은 기록 속에서도 보이는데 청학동이 그것이다. 청학동의 실존 여부는 아직도 확인된 바 없지만, 회자(膾炙)되는 무릉도원, 유토피아, 이상향과 같은 의미에서 인식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산수유 꽃과 만발한 개나리가 흔적을 감추고 연분홍 벚꽃이 천지에 흩날리면 지리산자락의 봄은 절정을 맞는다. 산벚나무의 마지막 꽃잎 하나 바람에 떨고 있는 사월 십일일, 청학동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지리산 ‘선유동천’을 찾아 나선다.
하동포구 모퉁이를 돌아 19번 국도로 들어서자 청정 섬진강이 은빛 물결 출렁이며 풋풋한 미소로 반긴다. 섬진강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려 눈물이 난다. 고고히 흐르는 저 강물이 인간의 이기심으로 어느 날 문득, 멈추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 때문이다. “섬진강은 이대로 흐르고 싶다.” 라는 길섶의 외침이 화살 되어 가슴에 박힌다.
축복의 땅 ‘하동’에서 구례 쪽으로 가는 낭만의 도로에는 벚꽃이 떨어진 허허로움을 쌀쌀맞은 배꽃이 청아하게 피어서 새로운 생기를 일으킨다. 꽃피는 마을 ‘화개’에 도착하니 십리벚꽃 축제가 막 끝나서인지 다소 들떠있는 것 같으면서도 포근하고 편안하다. 영호남의 갈림길인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목은 이른 봄, 수 백 그루의 벚꽃이 흰 뭉게구름처럼 엉겨 붙어 일시에 피어오르는데, 그 모습은 남도춘경의 으뜸이 될 만큼 황홀하다.
숱한 예술작품의 무대가 되기도 하는 이 ‘화개동천’은 신선과 관련된 전설도 유달리 많아 예부터 시인 묵객들이 모여든 곳이다. 이인로도 청학동을 찾아 나선 길에 “수많은 봉우리와 계곡들은 그 빼어남과 깊이를 서로 다투며, 대울타리에 초가들이 복숭아꽃 살구꽃 핀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어 거의 인간세상이 아닌 듯하다.”고 이곳의 선경을 예찬하지 않았던가.
화개동천속의 선유동은 ‘쌍계사’를 지나 ‘신흥마을’ 위, 오른쪽 계류를 따라 시작된다. 상큼한 풀냄새와 사월의 싱그러움이 출발의 설렘까지 부추긴다. 초입부터 초막으로 보이는 흔적도 간간이 보인다. 계곡 언저리를 메우고 있는 둥글 넙적 하며, 크고 작은 바위사이로는 투명한 물살이 경쾌하게 흐른다. 세수를 하고 양치도 해본다. 얼음처럼 차가운 사월 계류의 감촉이 짜릿하다. 푸른 소, 작고 예쁜 폭포, 반석 위로 구슬이 구르듯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주변의 붉디붉은 진달래 군락과 어우러져 신선들의 풍류를 그대로 재현하는듯하다. 반쯤 돋아난 여린 잎 새 사이로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 이미 지고 있는 산벚꽃, 조팝나무의 하얀 꽃망울들. 산과 물 사이로 무르익어 가는 봄날의 화음은 교향악이 되어 가슴속에 들어앉는다.
청학동의 모습은 어떠할까를 생각하며, ‘선유동천’ 속으로 쉬엄쉬엄 빠져든다. 두어 시간을 오르는 동안 언덕 곳곳에 집터와 전답들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유동은 어느 한 곳에 수 십 호가 모여 살았던 마을이 아니라, 길게 골짜기를 따라 늘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속세를 등지고 신선처럼 살다간 그 옛날의 주인들은 지금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사리암’ 의 자리라고 전해지는 마당 앞에는 진분홍 산 복숭아꽃이 하도 애절하게 피어서 지나가는 산객의 마음을 휘청거리게 만든다.
평평한 바위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뒤돌아보는 계곡의 모습은 더욱 영롱하다. 선유동의 봄이 무르익고 있다. 왕벚꽃, 산목련, 무성한 풀잎들이 계곡을 둘러싼 산허리로 너울너울 춤춘다. 나무들의 산, 꽃들의 산, 짐승들의 산이다. 그들이 베푸는 따뜻한 위안, 그것이 그리워 나 혼자만의 사랑으로 청학동을 찾아 나선 것이리라. 산 친구 송신근이 배낭 속을 뒤지더니 돌문어를 삶아 넣은 도시락과 소주 한 병을 꺼낸다. 한잔하고 가자한다. 신선이 머물다간 그 자리에서, 신선주를 마시고 신선이 되어 보잔다. 그 동안 술로 지친 몸이지만 선유동에서 신선주를 마다할 수는 없지 않는가. 한 잔의 술로 신선이 되어 세상의 숱한 시름들은 잊어본다. 삶의 아픔과 그리운 추억의 조각들, 마음깊이 꼭꼭 묻어둔 내 꿈의 씨앗까지도 스르르 날려버린다. 이렇게 가볍고 후련한 것을, 왜 버리지 못하는 것인가.
다람쥐는 분주하고 놀란 까투리는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오른다. 봄기운을 이기지 못해 교태로운 소리로 울어대는 두견새는 산 나그네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흔든다. 돌아올 수 없는 심산유곡으로 한없이 이끌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솜털 같이 아늑하다. 청학동은 이렇게 처음도 없는 애상감으로 밀려와 마음속 끝도 없이 침잠하는 것일까. 갑자기 내 안의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이래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한 것인가. 노란색과 이 아득하고 아련한 봄날은 청학동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계곡이 끝나는 곳에서 ‘삼신봉 능선’으로 오르려 하는데 길이 애매하다. 표지 리본을 따라 우측능선으로 붙으니 희미한 길이 열린다. 나의 노란 표지기 ‘바람따라, 그리움따라’를 정성껏 달아준다. 뒤에 올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그리고 코가 닿을 듯한 비탈길과 한바탕 씨름을 한다. 주변은 산수유 꽃과 흡사한 노란 생강나무 꽃이 화사하게 피어 수줍은 여고 일학년처럼 웃는다. 능선은 온통 노란색이다. 이 길을 따라 구슬땀을 흘리며 힘겹게 오르면 청학동에 도착하리란 믿음이 생긴다.
주능선이 다 보이는 산속의 봉우리에서 자리를 잡는다. ‘삼신봉’ 허리길이 감으로 잡히고, 전후좌우사방은 거침없는 조망으로 찬란하다. 지리산 남쪽, 최고의 전망대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계곡을 오를 때만 해도 봄으로 충만했던 계절이 이곳은 아직도 움을 틔울 준비만 하고 있는 회색 겨울이다. 지리산이 그의 다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단 한 숨 돌리고 선경에 들기로 한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광활한 푸른 바다의 물결처럼 출렁이는 백리 주능, 반야봉을 주봉으로 섬진강까지 현란하게 내리 뻗은 불무장등, 머리 위를 지나가는 지리산의 기둥격인 남부능선, 지리산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멀리서 아물거리기만 하던 호남 땅 백운산은 사천왕이 되어 눈앞에 우뚝하다. 이승의 영욕들이 바람처럼 스러지고, 새로운 피안의 세계로 녹아드는 듯하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이 풍광이야말로 청학동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주 능도 범속이 아니지만 삼신봉에서 상불재, 성제봉, 신선대로 이어지는 지능선도 산꾼들의 넋을 빼앗을 만큼 걸출하다.
감미로운 산상의 오찬을 마치는 대로 쌍계사 쪽으로 향한다. 호젓하다. 이런 산길이 좋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이 같은 욕망이 늘 삶을 힘들게 하는데도 말이다. 동남쪽으로 조금 내려와서 ‘상불재’ 이정표와 마주한다. 상불재는 ‘진주암’이 있는 ‘청학동’으로 갈수도 있고, ‘성제봉’을 거쳐 ‘섬진강’으로 빠질 수 있는 남부능선의 지리적 요충지다. 불일폭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노각나무, 고로쇠나무 등의 연초록 잎들이 봄날의 서정을 돋운다. 사람이 조성한 굵은 돌길이라 조금은 피곤하지만 첫길의 설렘으로 불일폭포를 맞을 준비를 한다. 불일폭포 갈림길부터는 북적대는 유산객들과 함께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간다.
‘불일폭포’는 과연 지리 십 경에 들 만한 품격과 기상을 충분히 갖추었다.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의 좁은 계곡에서 쏟아지는 육십여 미터의 물줄기는 주변의 풍광과 조화되어 황홀하고 웅걸한 풍광을 만든다. 원통 같은 수직절벽 위로는 새 각시 얼굴만 한 하늘이 환하게 웃고 있다. 협곡 사이로 무더기를 이루며 여기 저기 피어있는 진달래꽃은 부서지는 하얀 물줄기와 기품 서린 동양화 한 폭을 그린다. 이런 것이 청학동의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쉬움에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발길을 돌린다. 이곳은 유달리 붉은 소나무가 늘려있다. 상처 없이 잘 자란 키 큰 적송 사이로 길은 이어진다. 좌측의 아련한 계곡 사이로는 봄기운이 산수화 속에서 무르익는다. 예사롭지 않은 산세다. 청학동을 찾아 나선 선현들이, 불일폭포 부근을 청학동으로 생각한 이유가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불일평전’을 지나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전설의 바위, ‘환학대’에 도착한다. 둥글고 큰 바위 앞에는 안내 입간판과 함께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서럽도록 붉은 꽃잎을 피워내며 힘겹게 서있다. 매우화난 표정이다. 그 옛날 신선들이 찾아다니던 청학동이 지금은 무참히 부서지고 있음을 질책이라도 하려는 듯하다.
대체 청학동은 그 어디쯤일까. 갈등으로 분열된 시대, 청학동은 이미 하늘로 날아오른 마을은 아닐까. 아둔한 나의 눈으로는 청학동 속에서도 청학동을 볼 수 없을 것만 같기도 하다. 이상세계가 현실 속에서 존재할 수는 있을까. 청학동은 우리들 마음속에 내재된 영원한 안식처를 향한 원초적인 슬픔 같은 것은 아닐까.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영원 속에 청학동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내가 또다시 청학동을 찾아, 지리산을 오르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따사로운 봄볕이 고적감으로 무르익은 늦은 오후, 신비의 땅 하동 ‘쌍계사’의 상춘인파 속으로 빨려든다. 인산인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솟아오른다. 청학동(靑鶴洞)가는 길은 4월의 봄날처럼 아득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