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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방학! 이렇게 보냈어요


고래억 교사의 고구려·백두산 탐방기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이별은 괴로움을 낳고 생이별은 고통을 안겨준다"했다. 헤어짐에 대한 애절함이 사별의 고통 못지 않은 아픔임을
말한 것일 게다. 영원히 갈 수 없고 만날 수 없게만 생각되던 이산가족 상봉이 연일 뉴스의 탑을 장식하는 요즘 나는 조선족 자치주 길림성과
민족의 영지 백두산을 지난달 21~28일, 그린스카우트 단원 100여 명과 함께 탐방할 수 있는 가슴 벅찬 기회를 가졌다.

흔적만 남은 국내성, 습기·결빙으로 망가져 가는 벽화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장군총, 방치된 광개토대왕 碑…
1500년전 조상에 대한 메아리 없는 자랑밖엔
할 수 없어 안타깝고 부끄러워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丹東 페리호로 12시간을 달려 중국 東港에 이튿날 도착, 버스로 다시 약 16시간을 달려 通花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끊어진 철교의 신의주와 압록강, 북한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아! 이곳이 바로 교과서 속 우리 땅이로구나! 벅찬 감회와 함께 남의 땅을 거쳐 먼길
돌아오는 오늘의 현실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저 중원의 드넓은 땅을 거침없이 내 달렸던 고구려의 기상이 서려있는 集安에서 장군총과 광개토대왕의 비를 바라보는 순간 그나마 숨어있던 자존심이
조금은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옛 도읍지였던 국내성(지금의 集安)은 이제 무너져 내려 겨우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성터의 면모는 찾아
볼 수도 없었고 천년이 지나도록 찬란했던 고구려 5호 고분의 벽화는 습기와 결빙으로 그 아름다운 채색이 망가져 가고 있었으며 장군총은 북동쪽으로
기울려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고 광개토대왕 비는 날로 그 글자의 형체가 퇴색되어 가도록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남의 나라의 영광을 얼마나 관심있게 돌보아 주겠느냐는 생각에 우리의 국력이 미치지 못하는 한탄과 회한을 되뇌기며 나는 단원들에게
비장한 각오를 각인시키는데 혼신을 다하였다.
고구려의 숨결을 안은 채 우리의 70년대 경제개발의 상징이었던 공영여객 같은 버스로 터덜거리는 비포장을 또 10여 시간 달려 二道白花에 도착,
피로한 몸으로 여장을 풀고 다음날 그렇게도 고대해 왔던 백두산 등정을 기대하며 잠을 청했다.

이튿날, 맑은 햇살을 받으며 백두산 등정에 나섰다.
그러나 정상에 당도했을 때는 영도에 가까운 차가운 세찬 바람과 함께 안개와 구름, 비바람으로 사방을 분간하기조차도 어려워졌다. 일년 중 15일
정도만 천지를 보여준다는 신비의 영산은 정성이 부족했던지 우리에게 천지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주지 않았다.
풍자와 해학으로 일평생을 주유천하 했던 방랑시인 김삿갓도 금강산과 묘향산은 여러 번 올랐으나 백두산은 멀리서나 보았지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고
자작시 '작북유록탄불견백두산'(作北遊錄歎不見白頭山)을 통해 탄식하지 않았던가. 비록 천지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 도도함과 신비스러움에 오히려 가슴
뭉클함이 느껴졌다.
장백의 폭포수. 육당 최남선이 백두산 어머니가 눈물의 채찍질을 했다고 표현한 장백의 폭포수를 보는 순간 또 한번의 우리국토의 祖宗인 백두산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 백두에서 남녁끝 한라까지 북녘 끝 연변까지 내리달리는 백두대간의 머리산인 백두산은 분단의 비원을 안고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희망이요, 영산이 아니겠는가.

백두산 높이 낮아 앞뒤를 굽어보니
남북 만일에 옛 생각 새로워라
가신 님 정녕 계시면 눈물 질까 하노라.

"가곡원류" 에 실려있는 작가 미상의 이 시조는 백두산에 올라 빼앗겨 버린 조상의 옛 땅을 그리워하며 어지러운 현실을 한탄한 시다. 역사는
반복되어진다 했던가! 어쩌면 분단 조국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처지를 노래한 시가 아닌가.

이제 연암의 이별과 생이별의 애절한 아픔을 남겨놓고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그러나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짐은 곧 만남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의 글귀로 내일을 기약하며 우리 동포, 고구려의 기상,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뒤로하며 通花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밤새
달려온 완행열차 같은 특급 침대열차는 기적 소리 마저 우리 모두를 더욱 힘들게 했다. 칸막이 없는 측간과 신호등과 관계없이 제 갈 길을 가는
중국인들. 7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한 그 곳에서 조선족 동포가 해 준 된장찌개 맛은 국경도, 시간의 단절도 없었다.
아쉬움과 동포애로 서로를 위로한 후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通花를 출발, 인천항에 도착한 우리 단원들의 얼굴엔 깨끗하고 질서 있는 고국 앞에
감사했고 수세식 화장실을 갖고 있는 건물들에 흐뭇했으며 마중 나온 세련된 부모님께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린스카우트 지도교사연합회장·서울정의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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