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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⑫ 내시에게 아들이?

보통 내시들은 궁궐 안에서만 살았던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내시들은 일반 관리들처럼 궁궐 밖에서 가족과 함께 마을을 이루며 살았고, 궁궐로 출퇴근을 하였다. 내시들이 모여 살았던 곳은 경복궁과 가까운 곳으로, 지금의 효자동 부근이다.

내시들의 근무 형태는 크게 장번과 출입번으로 나뉘는데, 번은 교대로 근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근 시간은 정식 관리들과 똑같았는데, 봄~가을과 겨울의 출근 시간이 달랐다. 해가 긴 봄부터 가을까지는 오전 5시에서 7시 사이에 출근했으며, 퇴근은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에 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대략 오전 6시에 출근하여 오후 6시에 퇴근했으니까, 12시간 정도 근무한 셈이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오전 7시에서 9시 사이에 출근했고,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퇴근했다.

내시들은 내시부로 출근을 하였다. 조선 시대의 내시부 건물은 궁궐 밖의 준수방이라고 하는 곳에 있었다. 준수방은 경복궁 바로 옆에 있었다. 내시부 건물과는 별도로 궁궐 안의 내시들을 위한 건물로 내반원이 있었다. 내반원은 왕이 업무를 보던 선정전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데, 이는 왕의 시중을 들고 보살피는 것을 좀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이다.

내시들은 처나 첩을 거느렸을 뿐만 아니라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이기도 했다. 보통 한두 명을 입양했지만, 재산이 많거나 권세가 큰 내시는 4~5명의 양자를 들이기도 했으며, 양녀를 들이기도 했다. 양자나 양녀를 들일 때에는 아무나 들인 것이 아니라 집안의 내력, 경제력, 교육 수준 등을 따져 본 후 양자나 양녀로 들일지 말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처럼 내시는 결혼도 하고 양자나 양녀도 들이는 등 여느 가정과 똑같은 생활을 했다.

경국대전에 적혀 있는 내시부는 하나의 관청으로, 그 조직과 임무가 비교적 자세히 적혀 있다. 첫 번째 임무는 ‘대내감선’인데, 임금이나 왕비 등이 먹는 음식을 감독하는 일이다. 두 번째 임무는 ‘전명’으로, 왕의 명령을 관리나 왕족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세 번째 임무는 ‘수문’으로, 궁궐을 수비하기 위해 문을 지키는 일이다. 네 번째 임무는 ‘소제’라고 하는 것으로, 궁궐 안을 청소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으로 내시들이 하는 일을 규정한 것으로, 실제로는 궁중의 제사는 물론 왕실의 재산 관리, 궁궐의 각종 공사, 궁녀의 감독 등 궁궐 내의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내시들이 있어야만 가능하였다.

내시들은 왕의 곁에서 근무하면서 왕명을 전달하기도 하고 궁중의 궁녀들을 관리하기도 했기 때문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왕의 곁을 지키는 장번 내시는 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궁궐 안의 정보를 혼자만 알아 이를 이용해 많은 부정을 저지르는 등 나쁜 면도 있었다. 하지만 내시는 궁궐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일꾼이었으며, 개인적으로는 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시대적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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